하나님께서 그 턱의 우묵한 곳을 쪼개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 나오므로 삼손이 그 물을 마시매 그의 영이 돌아와 그가 회복되었으므로 그곳의 이름을 엔학고레라 하였으니 이것이 이 날까지 레히에 있더라(19)
이스라엘 백성과의 갈등으로 인하여 블레셋에 결박당해 끌려 간 삼손은 결박을 풀고 나귀의 턱뼈를 들어 그것으로 천명이나 죽이는 놀라운 권능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당시의 계절이 추수기로 매우 건조한 시기였기 때문에 매우 목이 말랐고, 물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님께 물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그 턱의 우묵한 곳을 쪼개시고 거기서 물이 나오게 하심으로 삼손의 갈증을 풀어주십니다. 그리고 삼손은 그의 영이 돌아와 회복되고 그곳 이름을 엔학고레라 이름하였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이해할 수 없는 두 가지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나귀 턱뼈로 천명이나 죽인 그가 목이 마르다고 기도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블레셋 사람 천명을 죽인 사건에 비하면 목마른 것은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삼손에게는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목마름으로 인하여 완전히 영도 소멸되고, 기력도 잃은 상태였습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도 쉽게 좌절에 빠지는 일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큰일을 닥치거나 위기의 상황에서는 강한데, 오히려 사소한 일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삼손과 같이 하나님의 일을 진행시켜 가는 데는 놀라운 능력을 보이면서도, 자기 자신 즉 육신의 일을 대할 때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지니는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삼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삼손은 그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언제나 자신의 감정에 따라 움직였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기도를 언제나 들어 주십니다. 그의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기도를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계속해 가심에 있어서 성도들의 실패와 실수에도 불구하고 뜻을 이루어 가시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고 그의 자녀들을 위로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 가십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주님의 호흡을 느껴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