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 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이에 입다가 그 형제를 피하여 돕 땅에 거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1-3)
입다가 그의 형제들에게서 쫓겨난 이유는 사실상 그의 어머니가 창녀였다는 이유라기보다는 재산문제로 보는 것이 더 옳은 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 집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는 형제들의 말이 이를 증명해 줍니다. 이 말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결코 낮선 모습이 아닙니다.
이 시대에도 유산 문제를 놓고 가족들이 갈라서는 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과는 3대를 넘기지 못하고 패가망신하는 처참한 결과를 낳습니다. 물질에 대한 집착이 많은 원수를 만들고 그의 몰락을 위로하기는커녕 즐기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몰락을 거듭합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동정을 받지도 못한 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입다의 태도입니다. 그는 형제들에 의해 비록 버림받았지만 대항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비멜렉과 같이 그의 형제를 죽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 마을을 떠났고 그의 주변의 사람들이 많은 왕래가 있지만 어떠한 계략을 꾸미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많은 이들이 찾아 온 것을 보면 상당히 덕망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입다를 하나님이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불이익을 당하면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입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쓰실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환경을 수용하고 자신의 일들에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자들입니다.
역사적으로 재침례 성도들의 가장 큰 특징을 꼽는다면 바로 이러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저항하지 않고 죽음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세상 법정에 고소 고발을 일삼으며 서로 싸우는 이들이 배워야할 교훈입니다. 부디 입다와 같이 자신의 환경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