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이켜 바알들을 음란하게 위하고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33)
기드온이 죽은 이후로 이스라엘은 또 다시 우상숭배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 빌미는 이미 기드온이 미디안 족으로부터 빼앗은 금귀고리로 에봇을 만들 때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지도자의 적은 실수 하나가 그의 죽음과 더불어 곧 바로 하나님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믿음의 본을 보이고 그를 기억하는 자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살았던 것과 비교하면 지도자의 신중함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중함을 겸비한 지도자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물질과 지식을 무기로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서지만 결국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 이유는 신중하지 못한 처신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다른 이들과 다름없는 사람이라고 항변하지만 사람들은 우리와 같다면 당신이 지도자가 될 이유가 없다고 반박합니다.
한 교회 지도자의 몰락은 곧 교회의 몰락을 의미합니다. 그 까닭에 복음을 전하는 자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경건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린도전서 9:27)
바울과 같은 위대한 복음 전도자도 자신을 복종시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다주는 결과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자였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신중하지 못한 처사들, 즉 비 진리와의 적당한 타협과 반 복음적인 문화의 수용 등은 지도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미 미국의 장로교회는 동성연애자들의 교회를 인정했고, 여자 목사는 이미 한국에서도 수십 년 전에 받아들여졌으며, 이방 종교의 절기와 의식을 이미 기독교화 하여 지키고 있는 것도 몇몇의 지도자들에 의해 수용되어진 상태입니다.
신중하지 못한 지도자의 자세는 결국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합니다. 한 교회의 지도자에게도 이러한 신중함은 요구됩니다. 오직 말씀으로 분별하고 성령 안에서 생활함으로서 누룩이 틈타지 못하도록 깨어 있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지도자의 모습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자와 그와 함께하는 성도들은 피차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