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이 주는 승리(수11:10-15)

조회 수 2971 추천 수 0 2010.06.06 23:05:10

하솔이 예전에는 그 모든 왕국의 머리였으므로 그 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하솔을 빼앗고 그 왕을 칼로 쳐죽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혼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숨쉬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하솔을 불로 태웠으며 또 그 왕들의 모든 도시와 그 모든 왕을 붙잡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주의 종 모세가 명령한 것과 같이 하였으되 튼튼하게 서 있는 도시들에 관하여는 여호수아가 불태운 하솔을 빼고는 이스라엘이 이 도시들 가운데 하나도 불태우지 아니하였으며 이 도시들에서 취한 모든 노략물과 가축은 이스라엘 자손이 탈취물로 취하였으나 모든 사람은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숨쉬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주께서 자신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 중에서 하나도 행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여호수아 11:10-15)

 

여호수아가 가나안에서 치루고 있는 싸움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싸움과 비교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지금까지 여호수아가 치러 오고 있는 싸움의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첫째로 대적들은 이 싸움이 하나님께서 싸우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움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적해 왔는데 이는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속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사단은 그들의 패배를 알면서도 결코 항복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적하여 이기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통해 의로운 삶을 산 자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전해 듣고도 악하게 살아가는 세상의 사람들을 봅니다. 아니, 오히려 이사야 선지자의 말대로 의로워 지기를 원치 않는지도 모릅니다.

 

『이에 그분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참으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느니라, 하며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그들의 귀를 둔하게 하며 그들의 눈을 닫을지니 이것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함으로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기에』(사 6:9,10)

 

악한 자는 자신이 의로워 지는 것이 두렵습니다. 의로운 자가 죄 짓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신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항복하고 스스로 종이 되기로 작정한 족속은 오직 기브온 족속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한 모든 족속은 전멸 당했습니다.

 

탕자가 스스로 아버지의 집을 떠나 방탕하다가 아버지의 품이 그리워 종이라도 되겠다고 작정하고 아버지의 품에 돌아왔을 때 잔치를 벌이고 자식으로서의 신분을 재확인하듯이 기브온 족속은 이방인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그들의 역사를 계속해 갈 수 있었습니다. 가나안 북부 지역의 연합군은 주동했던 하솔왕 '야빈'의 이름 뜻은 '지식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주동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위협하는 세력들은 결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아닙니다. 성경을 알고, 교회를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성경과 교회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있는 생명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생명 없는 지식, 생명 없는 교회는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형태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생명 있는 성도를 괴롭히고, 생명 있는 교회를 파괴하려 할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많은 교회들이 거대한 집단의 힘을 이용해 참되고 진실 된 교회를 무너뜨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 있는 교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싸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싸우실 수 있도록 성도는 진리로 무장하고, 언제나 기도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대적들은 연합군을 형성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남부에서는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을 중심으로 다섯 왕이 모여 이스라엘의 종이 되기로 한 기브온 족속을 치고자 하였고, 가나안 북부의 하솔의 왕 야빈도 가나안 남부 연합군이 전멸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적하기 위하여 주변 왕들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싸움이 숫자에 있지 않다는 싸움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끊임없이 숫자와 물량을 확보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외적 조건이 그들 자신을 보호하고 싸움의 승리를 보장한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많은 이들이 이러한 어리석은 방법을 택하여 물질, 명예, 권세를 얻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막상 최고의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몰락하는 경우를 흔치않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교회 안에도 이러한 사단의 교묘한 계략이 숨어들어 목회자와 성도들로 하여금 물질과 성도의 숫자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후에는 세상에서의 명예와 권세를 갖기 위해서 물질과 교회를 이동하는 경우를 흔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힘을 적절히 이용하여 세상에서 권세 잡으려 하는 단체를 좀 더 구체적으로 꼽으라면 가톨릭을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보듯이 교회의 힘을 빌려 황제를 폐하기도 하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며, 심지어 세계를 장악하려는 음모를 꾸며 근세기에는 1,2차 세계 대전을 주도하였고, 예수회, 일루미니이더, 프리메이슨 등을 참석하여 세계 정복에 대한 음모를 지금까지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대다수의 국민들이 생각할 때 가톨릭이 선하며, 사회사업을 통해 훌륭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정치를 배후 조종하고 있고 현재 성공적으로 그들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한국의 개신 교회들이 이러한 사악한 행위들을 그대로 본받아 따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끼리 서로 연합하여 거대한 단체를 만들어 가고 사단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며 복음과 상관없이 정치, 경제,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뛰어 다니며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아 할 목회자들이 세상으로 나가 자신들의 사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을 위해 힘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거듭났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별된 성도는 결코 세상 속에 멸망할 자와 더불어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사악한 곳으로부터 속히 나와야 합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또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그녀에게서 나와 그녀의 죄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녀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이는 그녀의 죄들이 하늘에까지 닿았고 하나님께서 그녀의 불법들을 기억하셨음이라.』(계 18:4,5)

 

연합군을 형성했던 가나안 사람들은 강하게 무장했으나 결국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무리들이 아무리 거대한 힘으로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를 핍박한다 할지라도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승리가 보장되었으며, 하나님은 이 승리를 위하여 끝까지 우리를 위해 싸워주실 것입니다.

 

셋째는 여호수아의 변함없는 믿음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믿음을 모세로부터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 약속하였습니다(출 3:8). 모세 역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셨다는 사실을 여호수아를 비롯한 모든 백성에게 선포했습니다(신7:2). 모세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충성한 지도자였습니다(히 3:5). 여호수아는 모세의 곁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눈으로 보고 행했던 산 증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서 믿음으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고 하나님의 싸움에 선봉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하여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강력한 지도력과 능력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제자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지도자의 참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그의 생애를 통해 여호수아와 또 한 사람 갈렙이라는 지도자를 세움으로서 그의 못다한 사역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영적 제자를 양성하는 데 실패하는 모습을 봅니다. 교회가 성장해 가고, 성도의 수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일군이 없어서 자체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외부에서 초빙해야 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러한 현상은 이미 한국 교회 내에서 보편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교단화 된 교회의 구조가 이러한 문제를 낳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일군을 양성하는 것은 교회의 큰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든 사역을 제자 만드는 일에 쏟으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을 만나셨고, 그 후에도 바울을 만나셔서 친히 사명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바울아, 기운을 내라. 이는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를 증거하였듯이 반드시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할 것임이라, 하시니라.』(행 23:11)

 

예수님의 사역이 지도자 만드는 일이었다면 바울 역시 지도자를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당부하기를 복음이 디모데에게 머무르지 말고 다른 이들을 가르쳐서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도록 하라고 권면합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들 가운데서 내게 들은 것, 바로 그것들을 신실한 사람들에게 맡기라. 그들이 또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

 

하나님은 복음이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복음은 전해졌을 때 그 가치가 있습니다. 그 까닭에 복음을 전한 일군을 양성시키는 것이 바로 지도자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분명 더욱 큰일을 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세가 이루지 못한 가나안 정복을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이루듯이 우리가 전하지 못한 곳까지 다가가서 복음의 능력을 드러낼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전 분야에 걸쳐서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에 매우 인색합니다. 더구나 날로 더해가는 개인주의로 인해 더욱 심각해져 갈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러한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에서 교회가 그들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지도자 양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도자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하고 능력 있는 삶을 보여 주고 함께 나눔으로서 만들어질 것입니다. 모세의 기적의 현장에 늘 여호수아가 있었듯이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믿음을 키워간다면 위대한 복음의 일군은 무수히 배출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지도자 양성에 관심을 가지는 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넷째로는 대적하는 자 가운데 호흡이 있는 자는 모두 전멸 시켰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죄를 대하는 자세를 언급해 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손해를 감수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언제나 경건한 생활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이 결코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죄 된 삶에 대하여 용납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작은 죄에 대하여 용납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가 결코 하나님을 섬기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들어온 죄악의 작은 씨들은 결국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소개한 아간의 사건에서 보듯이 그다지 중요치 않은 일처럼 행했던 불순종이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와의 전쟁에서 참패한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가 크든 작든 관계없이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다시 말하면 죄를 미워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에 하나님은 구별되지 않은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에 같이 머물게 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죄와 선이 함께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우리 안에서 죄의 근원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과제입니다.

 

『어찌 샘이 같은 곳에서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무화과나무가 올리브열매를 맺을 수 있겠느냐? 혹은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을 수 있겠느냐? 이와 같이 짠물과 민물을 내는 샘이 있을 수 없느니라.』(약 3:11,12)

 

그리스도인들이 죄에 대하여 스스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한다면 반드시 패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염두 해 두고 믿음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죄에 대한 분별과 싸움을 지속해 가시기 바랍니다.

 

다섯째는 가나안 정복이 싸움을 통해 얻어졌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이 이미 이스라엘의 손에 있지만 아무런 노력 없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말이 믿음에 행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싸우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달란트의 비유를 통하여 한 달란트 받은 불의한 종에 대해 언급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마 25;14-30).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자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이라는 이유도 기적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그는 책망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더불어 영적 싸움을 지속해 가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서 언제나 함께 하시며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어느 곳에서든지 동반자가 되어 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멘.』(마 28:20)

 

우리가 멈추어 있다면 주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멈추어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입을 열어 말하고 있다면 주님도 더불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원수에 대하여 싸우려 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도 싸우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수와 영적 싸움을 시작한다면 주님께서도 함께 싸우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싸울 때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부디 이 혼탁한 세대에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용기 있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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