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회복하라(수5:2-15)

조회 수 2819 추천 수 0 2010.06.06 22:58:08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행하여진 일은 땅을 정복하고 차지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자기 갱신이라는 명령을 받았고, 순종함으로서 가나안에 정착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하는데 실질적인 싸움의 대상이 바로 그들 자신이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미 앞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가나안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지만 소유하지 못한 것은 실제로 가나안 백성이 강해서가 아니라 소유할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이미 골리앗을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맡기셨지만 거대한 모습 앞에 두려워 떨고 있었고, 하나님은 어린 소년 다윗을 통해 골리앗을 무너뜨렸던 것입니다(삼상17:41-54). 즉 싸움의 성패는 그들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과 실패의 이유를 환경이나 배경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 자신의 신앙 성장 여부를 주변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결코 환경이나 여건이 그들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굳이 구약에서 예를 들지 않더라도 바울이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단 한 번도 순탄하지 않았던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환경적으로 많은 도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자냐? (내가 어리석은 자같이 말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더욱 넘치도록 하고 매도 지나치게 맞고 감옥에도 더 자주 갇히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로부터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몽둥이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을 당하여 한 밤과 한 낮을 깊음 속에 있었으며 자주 여행하면서 물들의 위험과 강도들의 위험과 내 동포로 인한 위험과 이교도들로 인한 위험과 도시에서의 위험과 광야에서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을 당하였고 또 지치고 아프고 여러 번 밤을 새우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금식하고 추위를 당하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

 

또한 바울 자신의 육체적 상태 역시 그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불평하다가 파멸시키는 자에게 멸망을 당하였으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불평하지 말라." (고전10:10)

 

그는 이 일로 인해 심히 괴로워하며 주님께 구했지만 결국 은혜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 일로 인하여 그것이 내게서 떠나가도록 주께 세 번 간청하였더니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지느니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나의 연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연약한 것들과 치욕과 궁핍과 핍박과 고난 당하는 것을 기뻐하노니 내가 약할 그때에 내가 강하니라." (고후12:8-10)

 

바울은 오히려 환경적인 어려움을 은혜로 여기고 망설임 없이 주어진 사역을 완수하고 후회 없는 성공적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은즉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딤후4:7,8)

 

죽음을 목전에 둔 바울의 이같은 고백은 결코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적인 삶을 산 자라야만이 이 땅에 미련을 두지 않고 죽음 앞에서도 당당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바울의 삶을 본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또한 그의 성공 비결을 알고자 할 것입니다. 무엇이 과연 그를 위대한 복음 전도자로 만들었을까? 물론 예수님의 부르심이 없었다면 바울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을 그가 자기 갱신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낮추고, 자신의 가진 환경과 여건을 배설물로 여기는 자세가 없었다면 위대한 복음 전도자 바울의 이름은 없었을 것입니다(빌3:4-9).

 

이제 우리는 성경 본문을 통해 자기 갱신에 필요한 몇 가지 자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과연 하나님은 가나안을 정복하는데 필요한 것으로 무엇을 준비시켰을까요? 이 준비가 어떠한 신식 무기보다 또한 군대 수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할례를 행하라

 

"그때에 주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예리한 칼을 만들어 다시 이스라엘 자손에게 두 번째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예리한 칼을 만들어 포피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2,3).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은 할례였습니다. 물론 오늘날 그리스도인 가운데 할례가 구원과 관계있다고 해서 할례를 행하는 어리석은 자는 없겠지만, 할례는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부싯돌로 칼을 만들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며, 할례를 행함은 죄와의 단절을 의미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진정한 할례를 받은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뻐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자니라."(빌3:3).

 

그리스도인 된 우리가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가져야 하는 무기는 바로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가치, 도덕, 행동에서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을 비교한다면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누군가와 동침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아니요'라고 말하지만, 비 그리스도인은 '만일 그것이 유익이 된다면'이라고 말하는 차이를 보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의 일들에 연연하지 않지만 비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의 성공 여부가 어떠한 사실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죄와의 단절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성경의 첫 번째 사역입니다. 여기에서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죄와의 단절이 우리의 노력이나 선행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할례를 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부싯돌로 만든 칼을 사용했듯이 마음의 할례를 받음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결코 할례를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 만에 바로 이러한 흔적을 남기고 죄와는 단절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주 예수님의 자국들을 지니고 있느니라."(갈 6:17)

 

우리는 더 이상 죄 아래 있지 않습니다. 또한 죄와 상관하며 살수는 더욱 없습니다. 어떤 몰지각한 이들에 의하여 죄가 모두 용서되었고, 앞으로도 용서될 것이니 방종하며 살아도 된다고 하는 주장에 현혹되어 넘어가는 이들도 있지만 바울은 이들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하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리요?"(롬 6:1,2)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정복에 필수적 과정으로 할례를 행함같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영적 싸움을 하는데 있어서 무장해야 할 필수 과정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육체의 욕심, 즉 죄와 단절하고 나가야만 함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유월절을 지키라

 

"이스라엘 자손이 길갈에 진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 여리고 평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유월절 다음 날에 그 땅의 묵은 곡식을 먹되 바로 그 날에 누룩 없는 납작한 빵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그들이 그 땅의 묵은 곡식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치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더 이상 만나를 얻지 못하였으나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10-12)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두 번째 준비는 유월절을 지킴으로 하나님께서 40년 만에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건져 주시기 위해 내리셨던 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던 사실을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애굽에 내려졌던 많은 재앙 중에 피를 보고 죽음이 넘어갔던 것을 기념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직 세상에 오시기 전이었지만 장차 오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고, 자신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아무도 예수님을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미 아벨, 노아, 아브라함, 요셉, 모세 등 믿음의 선진들은 예수님을 믿고 있었고, 그 믿음에 따라 행했음을 성경은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히 11:1-40).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으며 능력 또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 즉 복음이 그리스도인의 내면 속에서 지속적으로 호흡하고 있지 않다면 그는 결국 영적 전쟁에서 실패하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가 또 한 가지 염두 해 두어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지킨 이후로 만나가 그쳤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믿음 없고 광야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는 만나를 공급해 주시고, 이제 가나안에 이르게 되어 믿음이 회복되자 만나를 내리지 않고, 그 땅의 소산을 먹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만나가 영적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듣기만 하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만나만을 받아먹기 위해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어 그 속에서 양식을 취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지킴으로 믿음이 회복되는 순간 만나가 멈추듯이 복음으로 무장된 그리스도인에게 더 이상 지식을 쌓는 일만을 계속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만나만을 지속적으로 받아먹기만을 기대한다면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고, 삶은 무너져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기초 없이 흙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으니 물살이 그 집에 세차게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그 집이 크게 파괴되었느니라, 하시니라."(눅 6:49)

 

농사짓지 않는다면 결국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만나(하나님의 말씀)를 공급해 주셨고 믿음을 회복하도록 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가만히 앉아 양식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심한 기근으로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세상 속에서 씨를 뿌리고 결실하는 지혜를 가지고 풍성한 삶을 누리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주의 군대의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매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15)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정복에 앞서 세 번째로 여호수아에게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선 곳이 거룩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그가 선 곳이 곧 하나님의 소유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밟게 된 땅이 곧 하나님의 소유임을 가르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결국 그 앞에 여호수아는 신을 벗고 그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실제로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의 땅이 되기도 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지기도 하였습니다. 그 백성의 믿음에 따라 땅의 소유가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비밀이 여기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마치 자신의 것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헌금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드리고, 쓰임새도 자신이 옳다 인정하는 곳에 쓰려고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실은 우리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술, 마약, 불건전한 오락, 뇌물 등을 금하고 있는 이유도 하나님의 소유를 거룩하지 못한 곳에 사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이러한 부분을 예리하게 파고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단이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이 계신 곳이며, 거룩한 곳으로 만드시고자 하십니다. 우리의 선 곳을 죄악으로 물들게 만든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내가 서 있는 그곳을 거룩한 곳으로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가진 것의 실제 소유주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십시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주신 땅을 밟기 위해서는 죄와의 단절, 복음으로의 무장, 거룩한 소유를 가져야만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 아무런 대책 없이 도덕과 선행만으로 대항하려 한다면 반드시 패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충분한 준비를 해서 승리를 보장받는 성공적인 영적 싸움을 지속해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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