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에서 취한 열 두 돌(수4:1-9)

조회 수 3591 추천 수 0 2010.06.06 22:57:25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으로 인하여 요단강 앞에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동안을 광야에서 방황한 이후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순종하게 됩니다. 그들이 요단을 건너기에 앞서 매 지파마다 한 사람씩 십이 명의 대표를 뽑고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을 앞에 세우고 요단 물을 밟자 요단물이 갈라져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게 되었습니다.

"주 곧 온 땅의 주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르단 강의 물들 가운데 멈추어 서면 곧바로 요르단 강의 물들이 위에서 흘러내리는 물들로부터 끊어지고 일어서서 무더기같이 쌓이게 되리라, 하니라."(3:13)

이 물은 아담읍 변방에까지 일어나 쌓이고 염해(사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끊어진 상태에서 백성들은 여리고 앞으로 바로 향했고, 제사장들은 요단 마른 땅위에 섰고 백성들은 마른 땅위로 요단을 건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단 물이 아담읍 변방에까지 이르렀다 하는 것은 사망의 시작이 아담으로부터 왔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며, 염해(사해)로 흐르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죽음으로부터 건짐을 받았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을 때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죄로 인한 죽음이 멈춰질 것이며 사망으로부터 건짐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성도들의 신앙 생활의 과정에서 '침례'라는 의식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의식 그 자체가 우리를 구원할 수 없으며, 신앙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생명을 얻었다는 고백과 간증의 방법으로 침례를 행함으로서 확신과 담대함을 가지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의식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침례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침례를 받아야 하거나 받으신 분들은 누구나가 이 신앙에 이르러서 부디 세상을 승리롭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는 과정 속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행동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더욱 견고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 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요단이 갈라짐-지도자를 세우심

하나님께서는 지도자를 세우심에 있어서 백성들에게 권위를 가지고 다스릴 수 있도록 능력 또한 베풀어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실 때 본인이 능력 없음을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 중에 세우셨고, 애굽의 재앙을 통해서 백성 중에 신뢰감을 더했으며 결정적으로는 홍해를 가름으로서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확고하게 만드셨습니다.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원망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행동을 모세와 하나님을 동등한 위치에 놓고 생각할 정도로 권위 있는 모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죽은 이후로 여호수아가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는 과연 자신이 모세만큼 이 백성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권위를 가지고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함께 하시겠다고 분명하게 약속하셨고(수 1:9), 백성들도 여호수아의 말대로 따르기를 맹세합니다(수 1:17).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도자로 세우시는 일은 말로서 위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요단을 가르심으로 여호수아의 지도력을 더욱 확고하게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여리고에서의 터무니없어 보이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했고 결국 여리고를 함락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여호수아의 지도력을 모세의 수준으로 이끄시기 위해 요단을 가르셨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도자를 세우시기 위해 능력을 나타내는 일을 즐겨 사용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이김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기억 속에 남아 후에 왕이 될 수 있었고, 엘리야나 엘리사와 같은 선지자들 역시 많은 기적과 능력을 통해 영적 지도자로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이후에는 지도자의 필요성이 더욱 절박하여 베드로를 통해 앉은뱅이가 일어나고(행 3:1-10), 병든 사람과 귀신들린 사람들이 나음을 얻어(행 5:15,16), 영적 지도자의 위치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고, 바울 역시 심지어 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만을 만져도 병이 낫는 기적이 있게 함으로서(행 19:11,12), 복음 전도자로서의 권위를 세우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지도자의 권위를 세우시는 일을 중단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의 능력을 우리의 삶 가운데 드러내고 계시며, 많은 이들에게 능력을 베풀도록 하고 계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베푸시는 능력에 많은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과거처럼 병 고치고, 기적을 일으키는 일보다는 심령을 변화시키는 일들을 통하여 그 권위를 지닐 수 있도록 하십니다. 이 권위는 결코 우리의 생각과 계획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들 수 있다면 하나님이 함께 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적인 자격과 조건에 관계없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영적 지도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영향력이 크고 적음에 관계없이 그의 분량에 맞게 권위를 세우시기 위한 능력을 우리 가운데 베푸시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순종하는 자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일들을 행함으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복음으로 채워가는 일들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강 가운데서 건진 돌 - 예수 그리스도

"백성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취하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이제 너희는 요르단 강 한가운데 곧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열두 개의 돌을 취하고 그것들을 가져다가 이 밤에 너희가 머무를 장소에 두라, 하라, 하시니"(2,3)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열 두 개의 돌을 강 가운데서 취하여 그들이 머무를 곳에 두라고 명령합니다.

이 명령은 다소 엉뚱하고도 다소 의식적인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는 명령이지만 그 깊이를 이해한다면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돌'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람으로 향하던 중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 약속을 받고 일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 세워 서원하였는데 벧엘에서의 이 돌이 바로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었고(창 28:10-22), 에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교회 세울 것을 말씀하시면서 반석으로 자신을 표현하셨고(마 16:18), 바울 또한 예수님을 모퉁이 돌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엡 2:20).

요단 가운데서 돌을 건졌다는 것은 죽음 속에서 빼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우리의 자아가 죽어짐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얻을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로되 누구든지 나와 복음으로 인하여 자기 생명을 잃으면 구원할 것임이라."(마가복음 8:3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에 이르도록 그것을 보전하리라."(요한복음 12:25)

우리의 자아가 죽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입으로 제아무리 그리스도인이라 말한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사는 침례 신앙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의심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도 자아가 죽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스도인의 흉내만 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주변을 맴돌았던 마술사 시몬은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책망을 받았고(행 8:14-24), 바울과 오랫동안 동역을 했던 데마도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딤후 4:10).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무리 속에 있었고, 그들과 함께 사역도 했지만 육신의 소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침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아가 죽어짐을 고백하는 신앙이야말로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들이기에 앞서 세상의 모든 욕심들을 버리고 겸손함으로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돌을 건져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또하나의 중요한 비밀은 매 지파마다 취하고 그것을 그들이 머무르는 곳에 두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결코 집단을 대상으로 함께 하시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것은 주로 집단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예수님이 머무르는 것은 우리 각 개인의 인격 안에 있습니다. 어떤 이는 복음적인 교회에 속해 있는 이유로 자신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훌륭한 목사, 남편, 아내, 친척등 자신의 주변에 믿음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구원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생각을 교리화시켜서 현혹하는 무리들이 있는데, 지옥에 있는 자라도 현재 살아 있는 사람의 선행과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연옥설)하는 카톨릭 교회가 바로 그들입니다. 구원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제아무리 강요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믿는 자와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요단에서 건진 돌을 그들 곁에 두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들은 그분을 항상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위로자가 되시고, 승리로운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느곳을 가나 대적들은 두려워했고, 그들이 밟는 땅마다 소유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자들은 사단이 두려워할 것입니다. 또한 복음으로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재물과 건강 그 어느 것도 충분한 것이 없었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무장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속함으로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이방인의 본거지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그 어떤 것도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성장해 가기 위해서 재물, 명예, 권세, 지식 등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지만 이는 오히려 참 복음을 더럽히는 배설물이 될 수 있습니다(빌 3:4-9). 복음이 승리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음이라."(고린도전서 2:2)

바울의 승리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승리 비결 또한 요단강에서 건져낸 돌과 함께 유숙하는데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전 생애 속에 역사해서 온전한 구원을 이루고, 복음 안에서 승리로운 삶을 지속해 갈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대대로 물려줄 유산

"여호수아가 그들이 요르단 강에서 가져온 열두 개의 돌을 길갈에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되, 훗날 너희 자손들이 자기 아버지들에게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이 무엇을 뜻하나이까? 하거든 너희는 너희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르단 강을 건넜느니라. 이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 요르단 강의 물들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로 하여금 건너게 하신 것이 주 너희 하나님께서 홍해를 우리 앞에서 마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건너가게 하신 것과 같았음이니 이것은 땅의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주의 손이 강력함을 알게 하려 하심이며 또한 너희로 하여금 주 너희 하나님을 영원토록 두려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하니라."(4:20-24)

요단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져온 열 두 개의 돌을 길갈에 세우고 하나님께서 홍해를 건너게 하심과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이르게 하신 사실을 후손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기념하여 세웠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살아 계셔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계심을 알게 함으로 후손들이 그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물려 준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이 최고의 유산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자녀들에게 좀 더 많은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땀흘리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서 그것이 잘 못된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이 과연 한 세기 전에 재벌이었던 자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가문이 얼마나 있을까요?

저는 그러한 자를 한 사람도 알지 못합니다. 명예나 권세는 그보다 조금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어쩔 수 없이 몰락하고야 마는 것이 세상이 주는 유산입니다. 유태인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민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면면을 본다면 그다지 훌륭한 민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수십 세기에 걸쳐 나라도 없이 방황하였고 모든 민족들로부터 견제와 심지어 학살당했으며 이기적인 민족으로 따돌림받았습니다. 요즘 들어서 나라가 세워지고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와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배출해 낸 까닭에 그들의 교육 방법을 알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사람 취급도 못 받았던 떠돌이들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와서 그들이 우수한 두뇌와 교육 방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장 미개한 족속입니다. 애굽,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등 수많은 강대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전혀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모세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율법을 고수하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부의 사람들은 전통 복장과 의식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타협할 줄 모르는 민족입니다. 한마디로 시대에 뒤떨어진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지탱해 온 힘 또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유산으로 받았고, 민족적인 위기를 맞는 순간에도 신앙을 잃지 않음으로 오늘에까지 이를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그들의 역사를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민족이 우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조상이 남겨 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유산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을 통해 세상을 사는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육신적인 성공을 했다고 해서 후손들이 본받고 유산으로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우리가 남길 수 있는 재산이 있다면 믿음의 유산입니다. 이것은 결코 말로만이 아닌 삶을 통해 보여져야 합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은 가장 위대한 유산입니다. 디모데는 이 유산을 얻었던 자입니다.

"마음 속으로 네 눈물을 생각하며 너 보기를 몹시 원함은 내가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고자 함이라. 내가 네 속에 거짓 없는 믿음이 있음을 회상하노니 이 믿음은 먼저 네 할머니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으며 이제 네 속에도 있는 줄을 내가 확신하노라."(디모데후서 1:4,5)

믿음의 유산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육신의 것으로 유산을 남기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자신 안에 먼저 그리스도가 있는가를 생각하고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합니다. 거짓 없는 믿음으로 존경받는 믿음의 삶을 살아감으로서 본이 되는 그리스도인이 도시길 바랍니다.


이상으로 요단강에서 취해진 돌이 의미하는 비밀스런 말씀들을 묵상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얻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모시고 언제나 그분과 함께 승리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거짓 없는 믿음으로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여 본이 되는 생활을 지속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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