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서론)
예배를 논리나 학문으로 규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하나님)과 인간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서로 교제하고 높여드리는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용어를 정의하는데도 어떠한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신(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배의 사전적 의미는 “신(하나님)을 신앙하고 숭배하면서 그 대상을 경배하는 행위 및 양식”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두 가지 단어로 소개되고 있는데, “아바드”는 봉사 또는 섬김의 의미로 만들다, 숭배하다, 복종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단어 “샤아하”는 굴복하는 것 또는 자신을 엎드리는 것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은 어떻게 소개하고 있을까요? 신약성경에서도 두 가지 단어로 소개하고 있는데, 하나는 “프로스퀴네오”라는 단어로 이는 절하다 또는 굽어 엎드리다 혹은 입 맞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단어로는 “라트레이아”인데, 이는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시는 중에 사탄을 향해 “다만 그를 섬기라”(마4:10)고 말씀 하실 때 쓰인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영어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영어로 예배는 “worship”입니다. 이는 가치라는 의미를 가진 “worth"와 신분이라는 의미를 가진 ”ship"의 합성어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예배를 말할 때 “worship service"라고 쓰는데, 그 이유는 ”worship“이라는 단어가 존경과 존귀를 받을 가치가 있는 자라는 의미를 가졌으므로 그 자체로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분께 대하여 ”service" 즉 어떠한 행동을 보여드리는 모임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존경과 존귀를 받으실 그분께 대하여 행동으로 보여드리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와 예배의 관계
교회와 예배를 연관하여 설명해야 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예배가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예배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떠한 공동체일까요?
첫 번째 교회의 역할은 섬김을 위한 공동체입니다. 그 안에서 가난한 자를 돌아보고 고아와 과부들을 보살피며, 서로 위로하는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교회의 기능을 상실하여 기복신앙이나, 신비주의적 신앙에 열광하고 있지만 교회의 순기능은 섬기는데 있습니다.
두 번째 교회의 역할은 교제(코이노니아)를 위한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돌아보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제는 장차 천국에서까지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모이기를 힘쓰는 것에 대한 권면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4-25)
세 번째 교회의 역할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확장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는 전도와 양육에 관련된 것으로 교회의 역할 중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만 알면 구원받으면 되지 교회는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로부터 교회의 전 역사를 거쳐 전도와 양육은 교회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져 왔음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 교회의 역할은 예배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그분을 높여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임을 통하여 함께 경배하는 일은 모든 예배공동체에서 있어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각종 의식과 성례전을 통해 신앙을 고백하고 성도들은 한 몸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예배는 교회의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의 역사
예배의 역사를 보면 그 형식에 있어서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드려졌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의식에 공통적으로 드려져야 하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피”입니다. 구약에서는 짐승의 피가 드려졌으며,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없는 예배는 진정한 예배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배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모세이전의 예배를 대표하는 모습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양의 첫 새끼를 드린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고, 땅의 소산을 드린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노아는 정결한 새를 드렸고, 아브라함도 짐승이나 혹은 새를 드렸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짐승의 피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은 실제로 이방인들에게도 흔히 발견될 수 있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노아의 후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 이후에는 율법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까닭에 그들은 정해진 법에 따라 제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솔로몬 이전에는 성막에서, 솔로몬 이후에는 성전에서 드려졌습니다. 그 때까지는 율법에 따라 드려졌지만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는 회당에서 드려지게 되면서 오늘날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형식에 기초가 되었고, 예배를 회복하기 위한 예언자(선지자)들의 개혁적인 설교가 있었지만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파괴되어지고, 성전 안에 모든 기물들이 없어졌기 때문에 의미를 잃기도 했습니다.
신약시대에 들어서는 예배의 형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면서 회중들과 함께 하셨고, 공식적인 모임에서는 주로 가르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에 의해 복음이 전해졌고, 그들이 모였던 곳은 대부분 가정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집에 있는 교회”(고전16:19,롬16:5,골4:15,몬1:2)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제사의 형태보다는 주로 교제와 말씀을 나누는 형식을 갖추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초대교회에도 계속되었고, 바울에 의해 이방지역으로 복음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예배 장소는 회당이었습니다. 그곳 역시 제사를 드리는 곳이 아니고, 성경을 강론하는 장소로 사용된 곳이었기 때문에 바울을 비롯한 복음 전도자들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예배를 대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예배의 형태는 로마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을 받아들이면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중세교회를 거치면서 주로 성경 강론을 중심으로 드려졌던 예배가 의식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고, 이는 종교개혁 이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종교개혁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었던 루터나 칼빈이 로마 카톨릭 사제출신이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내용에 있어서 오늘날 개신교가 있게 한 인물이었지만, 의식은 로마 카톨릭의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서 오늘날까지 이 의식은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교회들이 이러한 사실들을 인지하고 열린 예배와 같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그 효과에 있어서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예배에 필요한 요소들
일반적으로 예배를 준비하는데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자세들에 대하여 많은 연구들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주장과 논쟁이 있었지만 이 세 가지 범위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자의 준비- 침묵, 영접, 고백
하나님으로부터의 응답- 성경, 설교
예배자의 응답- 찬양, 헌금(헌물), 믿음을 보임, 성도의 교제
그러나 개신교에서 추구하는 예배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생각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입니다. 즉 의식이나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자의 마음가짐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 번의 예배보다는 일상생활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드는 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배의 의식
교회가 역사를 거듭하면서 예배의 형식(의식)이 복잡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들이 이러한 형식들을 점차 줄이고, 단순화시키는 모습들을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 이후로 교회의 예배 안에서 빠뜨릴 수 없는 두 가지의 의식이 있는데 이는 세례(침례)와 만찬(성찬)입니다. 이 두 가지 의식을 빠뜨릴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침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실에 대한 고백을 위한 의식입니다. 이 의식 안에는 죽으심과 묻히심, 부활을 고백이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듭난 사실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리고 만찬(성찬)은 교회의 지체가 되었음에 대한 고백입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며, 우리는 그분의 몸(지체)입니다(고전6:15). 바울은 떡을 떼는 의식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고전10:16). 이는 전통적으로 중요한 의식이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의식들이 있지만 이 두 가지 의식만큼은 성경 안에서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지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
예배는 무엇보자도 예배자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값진 것으로 장식하고, 또한 사람들의 눈에 화려하게 보이는 예배라 할지라도 예배자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하지 않고, 형식적(위선적)인 모습으로 예배하려 한다면 그들의 예배는 결코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그리고 제사장들이 바로 그러한 자들이었습니다. 성경을 잘 알고 있었고, 완전한 제사를 드렸다고 자부하는 자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예배자들이 과거에 실패했던 그들의 모습을 보며 결코 어리석은 일들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