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

조회 수 4806 추천 수 0 2010.06.05 21:07:39

소라 사람으로 단 지파의 가족에 속한 자 가운데 마노아라는 이름의 어떤 사람이 있더라. 그의 아내는 수태하지 못하므로 아이를 낳지 못하더라. {주}의 천사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이르되, 이제, 보라, 네가 수태하지 못하므로 낳지 못하였으나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그러므로 이제 원하건대 주의하여 포도즙과 독주를 마시지 말며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말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지니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 되리라. 그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건져 내기 시작하리라, 하니라. (삿13:2~5)

사사들의 부패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을 행함으로 인하여 그들은 또 다시 블레셋으로부터 40년 동안 속박을 받게 됩니다(1). 이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또 한 사람의 사사를 준비하십니다. 단 지파 사람 마노아라 이름하는 이에게는 아이가 없었는데 주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수태하지 못하는 그의 아내가 수태하게 될 것이며, 그가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마노아에게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부정한 것은 아무 것도 먹지 말라고 명령하시고(4), 아들을 낳게되면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나사르(나실)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삼손을 수태시키기 위해서 마노아에게 성결된 생활을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도록 하고, 부정한 것을 먹지 말도록 함으로서 그의 몸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명령하십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예외 없이 동일한 원칙이 적용됩니다. 우리가 성결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낳을 수는 없습니다. 즉 전도자로서 거룩한 삶을 살지 않으면서 영혼을 구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경건한 가정 (사사기 13:6-25)

주의 천사의 말을 들은 마노아의 아내는 즉시 남편에게로 가서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리자 마노아는 즉시 기도를 드립니다. 그는 받은 말씀을 믿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을 구했고(8), 하나님의 말씀대로 양육하겠다는 의지를 보입니다(12). 그리고는 음식 헌물을 드리고,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올라갈 때에 주의 천사가 불꽃가운데 올라가자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놀라서 그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그리자 마노아는 그가 주의 천사인줄 알고 자신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하자(22), 그의 아내는 오히려 위로하며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23).

우리는 여기서 경건한 한 가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특징은 크게 세 가지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먼저는 마노아의 아내가 주의 천사의 말을 듣고 즉시 남편에게 가서 이 일을 고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매사에 모든 문제를 서로 상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부부의 갈등의 제일 원인은 서로가 대화가 없는데서 비롯됩니다. 경건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첫째 요건은 부부간에 사소한 대화라도 지혜롭게 풀어놓음으로서 서로가 한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부부 갈등의 원인이 대화의 부족에 있음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경건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경건한 가정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아내의 말을 들은 마노아가 즉시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즉시 응답이 되었는데(8-14), 이러한 사실은 그가 평소에도 기도생활에 충실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경건한 가정은 절대로 기도에 소홀하지 않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언제나 생활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사실과도 같은 것입니다. 기도 생활의 중심은 가정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경건한 가정의 마지막 특징은 말씀을 들은 마노아가 자신이 행할 일들을 구하는 장면에서 보듯이 순종하는 생애를 산다는 것입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어떻게 순종해 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기도를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도구로 사용하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관없이 생활하고 있으면서도 경건한 가정을 꿈꿉니다. 그러나 경건한 가정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대로 사는 가정이어야 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잘못된 결혼(사사기14:1-4)

삼손이 성장하여 결혼할 나이에 이르자 그는 블레셋의 한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일 각오를 합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완강하게 반대를 합니다. 그녀가 이방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여자와 결혼을 하는 것은 이미 율법으로도 금지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신명기7:2,3).

사실상 블레셋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남은 땅이었습니다(수13:3). 그러나 그 백성은 안정된 삶을 원했고, 그들을 몰아내지 않음으로 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이제는 결혼하려는 사사의 모습처럼 서로 혼합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이 일이 주께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4). 이 말은 곧 주께서 스스로 율법을 어기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주님은 때때로 그 분이 친히 주신 율법을 무시하고 그 분의 사역을 완성해 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일들을 종종 행하시는 경우를 봅니다.

호세아에게도 율법에 어긋나는 명령을 하심으로 그 백성에게 경고와 심판의 말씀을 주고자 하셨습니다(호1:2,3). 그러나 호세아는 주님의 뜻과 계획을 알고 비록 율법에 어긋나는 줄 알면서도 행하였지만, 삼손은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들이 주께서 행하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 뜻을 알고 있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그의 모습이 부모에게는 근심이 되었고, 후에 자신이 비참한 처지에서 그의 사역을 죽음과 더불어 백성을 구원하는 지경에 이르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뜻을 알면서 행하는 것과 모르고 행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또한 주님은 그 분의 사역을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뛰어 넘습니다. 전혀 주님의 뜻이 아닐 것 같은 것에도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당황할 것이 아니라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삼손이 20년 동안을 사사로 있으면서도 기도하는 모습은 죽기 직전에 단 한 번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죄악을 행함(사사기14:5-11)

삼손이 결혼 문제로 인하여 딤낫의 포도원에 이르렀을 때에 어린 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삼손은 주의 영의 감동으로 인하여 손에 아무 것도 없이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듯이 찢었고, 여자에게로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다시 내려 갈 때에 자신이 죽인 그 사자의 시체에 벌떼와 꿀이 있는 것을 보고 꿀을 취하여 먹고, 그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삼손은 그가 사사인 것을 잘 알고 있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의 문제는 사사가 어떠한 일을 행해야 하는지도,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도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즐기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방 여자와 결혼하려는 것도, 시체에서 꿀을 취하여 먹는 행위도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볼 때에 분명한 범죄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일을 아무런 가책 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나사르(나실)인으로서 머리를 자르지만 않는다면 사사의 자리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행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아무리 많은 범죄를 행한다 할지라도 머리만 보호받을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자기편이 되어서 싸워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마음자세가 많은 범죄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는 심지어 죽으면서까지 보복의 차원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16:28).

말씀의 무지함은 결국 우리를 죄악의 구덩이로 몰아넣는 결과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에서도 많은 이들이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술, 담배, 주일 성수, 십일조 등을 잘 행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분명히 자기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생활하는 성도들이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이 허점이 너무도 많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자들은 결국 사탄의 밥이 되어 더욱 큰 범죄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시대의 사명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말씀을 알고 행하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삼손의 수수께끼(사사기14:10-19)

삼손은 결혼 잔치 기간 동안에 블레셋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냅니다. 그 내용은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흘이 지나도록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약속된 일곱째 날이 이르자 삼손의 아내를 부추겨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오도록 요청합니다. 삼손의 아내는 울며 간청함으로 삼손으로부터 답을 알아내고, 자기 백성의 자녀들에게 알려줍니다.

일곱째 날 해지기 전에 그 도시의 사람들이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고 대답함으로서 수수께끼를 풀자 삼손은 분노를 하게 되고 그의 아내를 유혹해서 문제의 답을 알아낸 사실을 지적하고, 주의 영께서 삼손에게 임하자 아스글론에 내려가 그곳 사람들 서른 명을 죽이고 그들을 노략하여 수수께끼를 푼 자들에게 겉옷을 주고 자기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고, 그의 아내는 동무에게 내어 줍니다.

아무리 봐도 삼손에게 진지함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사자를 죽이고 거기서 나온 꿀을 먹은 것을 생각하여 수수께끼를 내었고, 서른 벌의 겉옷과 속옷을 줄 것을 약속하고, 그 아내에 의하여 답을 맞추자 30명의 사람을 죽이고 노략질을 하여 옷을 건네주고는 자기의 아내를 친구에게 맡기고는 아버지에게로 갑니다. 결국 그의 생활은 극히 감정적이고 무책임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그가 30명의 사람을 죽이는 과정에서 주의 영이 함께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결국 이 일이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처럼 감정적이고 책임감 없는 삼손을 쓰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들만을 쓰시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우둔하고, 감정적이며, 약한 자를 쓰시기도 하십니다. 비록 삼손 자신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많은 부족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도구로 쓰임 받고 있었듯이, 우리의 현재의 모습이 비록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에서 쓸모 없는 사람으로 비쳐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움직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분의 목적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8:28)

삼손의 복수(사사기15:1-8)

수수께끼 사건 이후로 얼마 후에 삼손이 다시 자기 아내에게로 돌아왔을 때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상태였으므로 삼손은 더욱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여우 300마리를 붙잡아 꼬리와 꼬리를 묶고 불붙는 나무 조각들을 취하여 그 두 꼬리 사이 한가운데서 나무 조각 하나를 달고 나무 조각에 불을 붙여 여우들을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 밭으로 들어가게 하여 곡식 단과 베지 않은 곡식, 포도원과 올리브를 살라버립니다.(4,5)

놀란 블레셋 사람들은 누가 이일을 행했는가를 묻고는 삼손이 그의 아내의 일 까닭에 그런 일들을 행했다는 사실을 듣고는 즉시 그의 아내와 장인을 불살라 죽입니다(6). 아마도 보복의 차원에서 행한 것처럼 보여집니다. 이 일을 알고 또 다시 삼손은 즉시 블레셋 사람들을 사정없이 쳐서 살육합니다.

삼손은 힘만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지는 않습니다. 그가 여우를 이용해 밭을 불사른 것으로 보아 지략까지도 겸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힘과 지혜를 두루 갖춘 훌륭한 사사이며,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이러한 능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러한 것들을 자신의 정욕을 위해 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블레셋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쓰여지고 있었던 것입니다(7).

오늘날에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각가지 은사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납니다. 그 능력이 주어진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 은사는 복음을 전하는데 쓰여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자신의 정욕에 이용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병을 고치고 자신의 부를 축적해 가는 일이라든지, 심지어 어떤 지도자들은 하나의 권세나 명예의 자리로 생각하여 남을 축복하고 저주하는 행위를 남발하는 경우를 흔치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나 재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육신적인 만족을 위해 사용한다면 결국 삼손과 같은 비참한 사역만을 지속하게 될 것입니다. 삼손이 능력을 육신적인데 사용한 결과는 끝없는 유혹과 시련뿐임을 기억합시다. 역시 우리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으로 육신대로 살아가게 된다면 유혹과 시련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참한 생애를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이 한 가지 사실을 언제나 기억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삼손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사사기15:9-13)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살육한 후에 블레셋 사람들은 유다에 진을 치게 됩니다. 놀란 유다 사람들은 블레셋과의 협상을 시도하게 되고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요구합니다. 유다 사람들은 삼손에게 다가가서 그들 결박하여 넘겨 줄 것에 대하여 말했고, 삼손은 유다 사람들에게 결박하여 넘겨주되 직접 치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결국 삼손은 유다 사람들에 의해 결박을 당해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삼손을 통하여 이미 구원의 일을 시작하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도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종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불레셋 사람들이 다가와서 생명의 위협을 가하자 삼손을 향해 '블레셋 사람들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 네가 알지 못하느냐?'하면서 꾸짖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리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내어주고는 오히려 삼손을 꾸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책임은 비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삼손의 부도덕한 행동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결코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방 여자와의 결혼, 언제나 술에 취해 사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따라 살인을 하는 모습들은 사사로서 권위를 가지기에는 매우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삼손의 모습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주는 결과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하는 사실은 지도자나 그를 따르는 자 모두가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는 수 많은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그 분쟁의 원인은 누구의 잘 못도 아닙니다. 지도자들의 부도덕한 행동들과 성도들의 불신앙이 합쳐진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들은 언제나 그의 행실을 조심해야 합니다. 언제나 사탄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깨어 있는 자세로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반면에 성도들은 언제나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둘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매한 자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계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갈증 해결(사사기15:14-20)

이스라엘 백성과의 갈등으로 인하여 블레셋에 결박당해 끌려 간 삼손은 결박을 풀고 나귀의 턱뼈를 들어 그것으로 천명이나 죽이는 놀라운 권능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당시의 계절이 추수기로 매우 건조한 시기였기 때문에 매우 목이 말랐고, 물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님께 물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그 턱의 우묵한 곳을 쪼개시고 거기서 물이 나오게 하심으로 삼손의 갈증을 풀어주십니다. 그리고 삼손은 그의 영이 돌아와 회복되고 그곳 이름을 엔학고레라 이름하였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이해할 수 없는 두 가지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나귀 턱뼈로 천명이나 죽인 그가 목이 마르다고 기도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블레셋 사람 천명을 죽인 사건에 비하면 목마른 것은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삼손에게는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목마름으로 인하여 완전히 영도 소멸되고, 기력도 잃은 상태였습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도 쉽게 좌절에 빠지는 일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큰 일을 닥치거나 위기의 상황에서는 강한데, 오히려 사소한 일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삼손과 같이 하나님의 일을 진행시켜 가는데는 놀라운 능력을 보이면서도, 자기 자신 즉 육신의 일을 대할 때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지니는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삼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삼손은 그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언제나 자신의 감정에 따라 움직였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기도를 언제나 들어 주십니다. 그의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기도를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계속해 가심에 있어서 성도들의 실패와 실수에도 불구하고 뜻을 이루어 가시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고 그의 자녀들을 위로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 가십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주님의 호흡을 느껴야만 할 것입니다.

창녀의 집으로 간 삼손(사사기16:1-3)

블레셋 사람들과의 격렬한 싸움이 있은지 얼마되지 않아서 또 다시 삼손은 블레셋의 다섯 성읍 가운데 하나인 가자(수13:3)에 들어가서 창녀를 보고 그와 함께 동침을 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가자 사람들은 도시의 성문에 매복하고 아침에 날이 밝을 때에 삼손을 죽일 계획을 합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된 삼손은 한밤중까지 누웠다가 한밤중에 일러나 성 문짝들과 두 개의 기둥과 빗장을 빼어 모두 어깨에 매고 산꼭대기로 가지고 올라갑니다.

삼손의 이러한 행동은 그들의 마음을 긴장시켰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성문은 국가의 힘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삼손의 행동은 블레셋에 대한 정면 도전과도 같은 행동이었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엄청난 파장은 생각하지도 않은채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려는 그들에게 정면으로 대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삼손이 사사이면서 나사르(나실)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범죄를 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결혼의 실패와 생명의 위협 등으로 인해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범죄의 행위는 멈추질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에는 이방 여인과의 관계로 인해 주의 말씀을 거역하더니, 이제는 창녀와 관계를 함으로서 더욱 발전된 죄악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러한 모습은 쉽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는 말하지만 오히려 구원받았음을 무기로 방종하여 그 죄악이 날로 심각할 정도로 커져가는 성도들을 흔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삼손이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을 오히려 자신의 범죄함을 만회하거나, 육신의 정욕에 사용되었던 것처럼 성령을 통한 은사나 재능들을 자신의 죄를 가리우고, 육신을 위해 쓰는 성도들도 이 시대에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입니다. 성령이 결코 우리의 육신의 도구가 되도록 해서는 더욱 안될 것입니다. 성령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육신의 정욕대로 살도록 두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 도구로 사용되어지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언제나 경건한 삶을 위해 힘을 쓰는 자세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지혜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패로 가는 인생(사사기16:4-22)

사사와 나사르(나실)인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한채 살아가는 삼손에게 하나님은 끊임없이 함께 하심으로 능력을 나타내도록 하셨지만 깨달음이 없이 살아가는 삼손은 비참한 인생의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의 수많은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책망하거나 징계를 하시지 않았습니다. 이일들은 오히려 삼손이 계속해서 범죄를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지난 죄들에 대하여 눈감아 주시리라고 생각하는 생각을 가지고 또 다른 범죄를 시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4). 채칙이 없는 삼손의 생활은 더욱 담대한 범죄를 더해만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악한 일에 대한 판결이 속히 집행되지 아니하므로 사람들의 아들들이 마음속에서 악을 행하기로 완전히 작정하였도다.』(전도서8:11)

죄를 대단치 않게 생각하고 있는 삼손은 머리를 깍인 이후에 주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곧 삼손이 범죄와 함께 영적인 감각조차 무뎌져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죄는 우리의 영적인 감각을 느낄 수 없도록 합니다. 삼손이 자신의 힘의 근원을 말하지 않고 있다가도 죄와 더불어 비밀을 드러내고 결국에는 그 근원을 잘리우듯이, 죄는 우리의 믿음의 비밀을 드러냄으로 은혜에서 떠나도록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죄의 또 다른 면은 달콤하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들릴라와 달콤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삼손은 그녀를 사랑했습니다(4). 그 까닭에 그는 자신의 힘의 근원을 그녀에게 고백하게 되었습니다(17). 결국 이일로 인하여 삼손은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달콤하게 다가왔던 죄의 유혹이 그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과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느니라』(야고보서4:4)

세상으로부터 오는 죄는 달콤하게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는 일이며,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죄의 달콤함에 우리를 노출시키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소명을 바로 알아 이 시대에서 경건하고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삼손의 마지막 기도(사사기16:23-31)

머리털을 잘린 후 두 눈이 뽑히고 족쇄로 결박당하고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어버린 삼손은 이제 블레셋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25). 나귀 턱뼈로 천명을 죽이던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가 이제는 그들의 노리개가 되어 비참한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는 복수의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머리털이 자람과 동시에 그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키워가기 시작했고, 드디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는 두 개의 중간 기둥을 양손으로 잡고 힘을 다해 무너뜨림으로 그 안에 있는 삼 천명 가량의 사람들을 덮쳐서 죽이게 됩니다. 눈이 빠진 삼손은 오히려 건강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는 그 자신도 함께 죽음으로서 사사의 임무를 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가 마지막 기도할 때조차도 자신의 눈 뺀 것을 단번에 원수갚게 해달라는 말을 함으로서 여전히 그 싸움이 하나님의 싸움이 아닌 자신의 싸움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봐도 그의 자세는 사사와 나사르(나실)인으로서의 자세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하는 일을 이루시고 계셨습니다. 비록 자신의 정욕대로 살아가려는 삼손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사실을 통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비록 연약한 삶을 지속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삼손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히11:32). 그의 정욕에 따라 사는 행위에도 불구하고 한 번 약속하신 구원은 취소하시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성도들을 결코 버리시지 않습니다. 다만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들은 상을 얻기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안전한 구원만을 믿고 방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지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35 미가야(Micaiah) [1] 이진천 2010-06-16
34 아하시야 [1] 이진천 2010-06-05
33 입다 [1] 이진천 2010-06-05
32 오바댜 [1] 이진천 2010-06-05
31 르호보암 [3] 이진천 2010-06-05
30 [2] 이진천 2010-06-05
29 엘리사 이진천 2010-06-05
28 엘리야 이진천 2010-06-05
27 아합 이진천 2010-06-05
26 여로보암 [1] 이진천 2010-06-05
25 솔로몬 [1] 이진천 2010-06-05
24 사무엘 이진천 2010-06-05
» 삼손 이진천 2010-06-05
22 기드온 [8] 이진천 2010-06-05
21 미리암 [1] 이진천 2010-06-05
20 갈렙 [2] 이진천 2010-06-05
19 여호수아 이진천 2010-06-05
18 아론 이진천 2010-06-05
17 요게벳 이진천 2010-06-05
16 모세 [186] 이진천 2010-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