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9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이단으로 알려진 마르시온파는 5세기까지 활동하였는데, 그들은 오직 바울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 가르침을 이해했다고 믿었던 자였습니다. 그들은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나머지 여덟 개의 바울 서신과 누가복음을 성경으로 받아들였고, 성경의 일부는 수정하거나 삭제한 상태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바울의 추종자가 된 것은 그가 엄청난 영향력을 주었다는 사실도 있겠지만 본문의 표현처럼 종종 “내가 전한 복음”(my gospel)(8)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롬2:16,16:25). 그리고 그의 복음이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1:12)고 말함으로서 그의 복음이 특별한 것임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시온이 가르친 내용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일부는 완전히 수정하여 사용하였는데, 가령 예를 들어 예루살렘에 있는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난 바울의 모습을 삭제하였고(갈1:18-24), 아브라함의 믿음이 언급된 부분도 삭제하였으며(롬1:17,19-21,3:31-4:25,8:19-22,9:1-33,
10:5-11:32,15:1-16:27;갈2:6-9,3:1-12,15-25,4:27-30), 예수님의 탄생기사(눅1:1-2:52), 세례요한에 대한 기록(눅3:1,4,15)을 삭제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예수님의 족보나 사탄의 유혹을 받는 기사도 삭제하였습니다. 이들은 육체는 악한 것이고, 영은 선한 것이라는 극단적 이원론을 주장하였으며, 이는 당시 영지주의지들과 같은 바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자들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대하여는 하나님을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으로 규정하였으며, 이에 따라 구약을 유대인들만을 위한 경전으로 인정하고, 구약을 거절하였습니다. 오직 신약 성경, 특히 바울의 서신만이(누가복음 포함) 하나님에 대하여 바르게 일깨워 준 성경으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들은 초대교회의 교부들(저스틴, 이레니우스, 에피파누스등)의 적극적 반박이 있었고, 그로 인하여 그들로부터 거짓 교리로부터 교회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그의 복음에 관한 내용은 성경에 기록한대로 바울뿐만이 아닌 많은 사도들이 증언한 내용들과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입니다. 그것은 바울이 기록한 것과 같이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고전15:3-8). 그리고 바울 자신도 그분을 만났으며, 예수님의 부활이 곧 그가 전하고자 했던 복음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고전15:12-54). 그러므로 바울의 복음은 그에게만 특별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가 보고 들은 것들을 증언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사도들과 많은 증인들을 통해서 더욱 확실하게 인정되었고, 초대교회로부터 수많은 다른 복음들을 방어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씨에서 나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반드시 다윗의 씨에서 나야 한다는 사실에 관하여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삼하7:12,13;시89:28;132:17;행2:30;롬1:3). 이방인들에게는 이 사실에 관하여 큰 관심을 가지지 못할지라도 초대교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유대인들, 특히 흩어진(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예수님이 다윗의 씨였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둘 필요가 있는 것은 성경 안에서 종종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예수”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대부분 인성이 강조될 때에 예수님을 앞에, 신성이 강조될 때에는 그리스도를 앞에 둔다고 이해하면 무리가 없습니다. 여기서는 예수님을 앞에 둠으로서 인성이 강조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죄인처럼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오직 복음만을 전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사회에서 범죄자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 까닭에 수없이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행20:23;23:29;26:31;골 4:18;몬 1:13).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실적으로 그는 복음을 전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없을지라도 다른 경로들이나 사람들을 통하여 복음은 지속적으로 전파될 것입니다. 지금도 복음을 핍박하고, 그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고난 중에 있지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난 중에 있지만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해 이 모든 것을 참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택함 받은 자들은 이미 구원받은 자들을 말하기보다는 앞으로 복음을 믿고 구원받게 될 자들을 말합니다. 이 선택은 오직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롬5:8;9:11-13;고전1:27,28;4:7;엡1:4;2:8;요 4:10,19). 오직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선행은 구원을 받는데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을 영접한 자는 성령께서 그 안에서 함께 하실 것이며, 그의 삶, 즉 그의 양심은 점점 하나님의 자녀로서 선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부활의 신앙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11)고 말합니다. 초대교회의 상황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실만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믿음은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 까닭에 바울은 이 상황을 견디어 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가 올 세상에서 그분과 함께 다스리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고, 만일 부인한다면 그분도 우리를 부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고난의 삶에 동참하는 자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보상이 주어지게 될 것이라고 고대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최종적인 목표가 이 세상이 아닌 다가올 세상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소망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될 때에 심판의 날에 버림받아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벧후2:1;유1:4). 우리의 목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하겠습니다.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들이 소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분께서 항상 신실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13)라고 말합니다. 이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 여전히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계시며, 심판을 피할 기회를 주고 계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신실은 단순히 사람들을 향한 인내와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실의 또 다른 의미는 공의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 반드시 심판하시고 그들을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할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공의가 실현되지 않게 된다면 그분은 스스로 정직하지 못한 것을 증명하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 까닭에 바울은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13)고 말함으로서 자신의 약속을 실현하시고, 또한 공의로 심판하실 것에 대한 것을 분명하게 설명하고자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