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3~25)
종교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모이는 것을 "주일 성수"라는 개념에 적용시키려 합니다. 사실 이러한 사상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오히려 모임을 제한하려는 사탄의 교묘한 수법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매일 모였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행2:46). 뿐만 아니라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는 권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히3:13). 그것은 그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모이는 것은 단순히 교제를 나누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기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히10:23,24).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넘어지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 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들은 마땅히 모임의 기능을 통하여 자신을 보호하고 또한 많은 이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주님의 날을 고대하는 성도라면 당연히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려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만 합니다(히10:25).
우리는 이미 많은 경로들을 통하여 믿음이 들음에서 나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롬10:17). 또한 기록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읽고 들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상식적인 것입니다(계1:3). 그렇다면 듣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모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 자리에 앉아서 들었을 때 믿음은 더욱 큰 분량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듣는 수단이 다양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TV나 Radio, 인터넷과 같은 경로들을 통하여 신앙의 유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말씀이 선포되는 현장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듣는 이로 하여금 더욱 진지하게 만들어 줄 것이며, 보다 신선하고 영적 삶에 유익한 양식 즉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여야 하는 가장 큰 이유를 설명한다면 역시 몸의 기능을 다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은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몸으로서 우리는 개별적으로 지체입니다(고전12:27). 몸은 따로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몸이 각자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몸 전체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 중 누군가가 모이기를 싫어한다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교회에 붙어서 함께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안에 있었을 때 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모이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요15:4,5). 또한 모이기를 원하지만 세상의 일들로 인하여 모이기를 주저하고 있다면 교회는 분명히 병이 들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몸으로서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와 관련하여 이처럼 모이는 문제를 점검해 보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전도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거듭나고 새 생명을 얻는 것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부 무지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구원의 안전만을 생각하고, 구원만 받으면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이제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시는 날만 기다리면 된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도 힘겨운 일이기 때문에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생각을 하기에 앞서서 먼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교회라는 공간을 만드셨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전도는 복음을 알게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생명을 얻은 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라는 공간 안에서 가능합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누구도 생명력을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특수한 환경에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회를 상상하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안에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는 말씀을 생각한다면 구원받은 사람이 교회에 더해지는 일은 어떠한 이유로든 핑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성장은 오직 한 몸인 교회 안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들은 건물의 기초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 안에서 뼈대를 이루고, 자라서 함께 거룩한 전으로 완성해 갈 수 있습니다(엡2:17-22).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간다면 그는 생명을 이어갈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영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쯤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한 몸이며, 지역교회를 포함한 모임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장차 신부가 될 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들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현재의 교회들이 드러내고 있는 부패한 모습들을 생각하면 “과연 주님의 교회일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 더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의 문제들은 결코 오늘날에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수많은 교회들이 부패되고 타락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나,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그리고 각종 서신서에서 소개되고 있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러한 교회들을 향해서 “주님의 교회”라는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부족하고 문제투성이인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주인 되시고, 친히 머리가 되신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기피해서는 안 될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모이기를 주저하고 계십니까?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매일 모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오직 모임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을 지켜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더불어 오늘날 모이기를 귀찮아하고 게으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오늘날 성도들의 모습과 그들의 모습을 비교해 보십시오.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모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전도를 해서 그들에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이유입니다. 많은 속이는 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교회는 구원받는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하면서 구원은 받되 교회는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구원받은 자가 주님의 교회에 더해지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성장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교회에 더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행2:41,행5:14,행11:24) 반드시 주님의 교회로 안내하십시오. 그것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온전한 전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