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시리즈(6) 누구에게 전할 것인가?

조회 수 2807 추천 수 0 2010.12.24 09:27:15

 

이 일들 후에 그분께서 나아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금 받는 곳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일어나 그분을 따르니라. 레위가 그분을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푸니 세리들과 또 그들과 함께 앉은 다른 사람들의 큰 무리가 거기 있더라. 그런데 그들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대며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하매 예수님께서 응답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온전한 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으나 병든 자들에게는 필요하니 나는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하시니라. (5:27~32)

 

전도의 대상을 구분하는 것은 어리석은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성경은 모든 사람, 혹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전도의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경험하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동일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전도 방법은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답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였던 레위, 즉 마태에게 다가가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고, 자신의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레위는 백성들에게 원성을 듣는 자였습니다. 백성들의 혈세를 거둬 자신의 배를 불렸고, 로마의 정권에 아부하는 자로 인식되었던 자입니다. 그는 비록 유대인이었지만 백성들로부터 소외된 자였습니다. 자신의 배를 불릴 수는 있을지라도 영적으로는 매우 궁핍한 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다가가셨고, 그를 부르시고, 결국에는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재물과 명예는 가지고 있지만 영적으로 갈급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이 가난한 자(5:3)에게 다가가셔서 그를 부르셨듯이 이 시대에 영적인 갈증으로 목말라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 다가가는 일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레위의 행동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예수님의 뒤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소식을 들려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매우 갈급해져 있는 자들이며, 이 세상에서 소외된 느낌으로 사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그들에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합니다.

 

레위의 부르심이 있은 이후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그들은 유대인들을 대표하는 종교인들입니다. 서기관은 성경을 보존하는 일을 맡아 필사하는 것을 직업으로 둔 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기록된 말씀대로 사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예수님의 사역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고, 또한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 안에는 이미 너무도 많은 지식으로 인해서 더 이상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배부른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부른 그들에게 화가 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6:25,6:26). 배부른 자가 먹을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와 세상의 지식과 신념으로 가득한 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보면 서기관이나 바리새인과 같은 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미련한 복음(고전1:18-25)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믿는 자들을 설득하려 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했던 것처럼 핍박하고, 죽이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록 세상의 논리로는 설득시킬 수 없을지라도 복음은 그 자체로 능력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전도가 레위와 같이 영적으로 갈급해 있는 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병든 자를 찾아 다니셨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가난한 자들은 언제나 먹을 것을 찾아 나섭니다. 그들은 먹을 것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의 전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보리 빵과 작은 물고기로 오천 명, 혹은 사천 명을 먹이시며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날 가난한 이웃 나라에 구제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행위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자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사건입니다. 이 세상에서 빵의 문제는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사람들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들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어떠한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선교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전쟁을 치렀던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모습입니다. 전쟁 이후로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기에 선교사들의 구제사역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들은 빵과 더불어 복음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어 후에 교회 부흥을 이끄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빵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는 없지만 그것은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빵을 원하지만 더불어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이미 선교의 현장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방법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주변에 가난한 이웃들을 돌보고 그들을 구제하는 일에 적극적이며, 진리를 알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제는 그들을 복음 안으로 인도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예수님께서는 이미 보여주셨습니다.

 

가난한 자와 더불어 병든 자를 찾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일단 병든 자는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육신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자입니다. 그들에게는 당연히 누군가 찾아가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병을 고쳐 주셨고, 자신이 누구인지에 관하여, 즉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몰론 예수님 당시에 복음을 정의 한다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예수님 자신이 곧 길과 진리와 생명이시기 때문에 그분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을 곧 복음을 전하는 것과 동일하게 여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으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세상에는 실제로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고통이 커져가는 만큼 영적인 갈망도 더욱 커져갈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로하고 구원할 누군가를 찾고 있으며, 그는 다름 아닌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물론 질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를 의지하는 자들도 있지만 육신의 고통은 그를 매우 힘들게 하며, 더욱 복음을 필요한 상황으로 이끌 것입니다. 주님께서 병든 자들에게 향하셨던 것은 바로 그들의 상태를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으며, 육신의 질병과 함께 구원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전도 방법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다가서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힘겨운 삶을 사는 자들에게 복음은 매우 희망적인 것입니다. 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이 빛을 찾아 나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있어서 희망은 없습니다. 그것은 곧 그들에게 희망을 가져다 줄, 곧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할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할 분을 기다리고 있는 자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어둠으로부터, 즉 멸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구원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를 향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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