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인 교회의 조건[8]
주님의 만찬
일반적으로 주님의 만찬을 말할 때는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하나의 규례쯤으로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물론 만찬은 세례(침례)와 더불어 주님의 교회가 행해야 하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이 규례를 행하게 하는 데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욱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만찬의 행위는 주님의 몸을 나누는 것이며, 교회는 바로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 만찬이 다만 교회 안에 정해진 하나의 규례정도로 생각하고 실행하지만 그것은 주님의 만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만찬이 실행되고 있지만 많은 갈등과 분열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바르게 알고 가르치는 것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만찬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다면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을 위해 전 성도가 함께 협력하여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만찬을 실행함에 있어서 그에 관한 논란은 조용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카톨릭과 같이 화체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떡과 피가 예수님의 실제 몸과 피가 된다고 주장을 함으로서 지나치게 만찬을 신성시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반대로 어떤 이들은 만찬의 의미를 축소함으로서 거의 행하지 않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일년에 몇 번의 만찬을 실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는 명확하게 성경을 통해 제시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자주 행해져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데도 대부분 이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또한 논쟁거리 중에 하나는 바로 누가 참여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구원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가르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세례(침례)를 받은 이들만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역교회에 속한 자들만이 만찬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하는 반면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교회를 인도해 가는 목회자의 견해에 따라서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만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주님에 의해 시작된 만찬
주님의 만찬이 처음 시작된 것은 배반당하시던 날 밤, 예수께서 기념잔치(Remembrance Feast)로 제자들과 함께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마 26:26-30; 막 14:22-26; 눅 22:14-20). 이 주님의 만찬은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후에 교회 안에서 실행되었으며(행 2:42; 2:46; 20:7), 바울에 의해 교회 안에서 실행해야 할 규례로 가르쳐졌습니다(고전 11:20-34).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규례를 제정하실 때, 만찬을 몹시 원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2:15). 첫 번째 주님의 만찬은 유월절 밤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월절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 5:7).
만찬은 신약교회들에게 있어서 세례(침례)와 더불어 매우 중요한 규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진리를 담고 있으며, 결코 습관적으로 해서도 않됩니다. 그것은 이미 주님에 의해 제정된 규례이며, 신약교회에 있어서 그들의 신앙을 보여주는 중요한 간증의 행위라고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주님의 만찬은 한 몸의 지체로서 믿는 이들의 하나 됨을 상징한다.
우리는 주님의 교회 안에서 만찬을 실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교회의 회원이 된 자들만이 행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물론 누가 교회의 회원인가에 대한 기준을 설정함에 있어서 다소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구원받은 사실이 분명하고, 그 간증으로 세례(침례)를 행한 자에게만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도록 허락합니다. 그것은 상징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6-17)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그 몸의 지체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몸 안에 살과 피가 있듯이 만찬에는 예수님의 살과 피가 있으며, 성도들은 그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만찬이 단순하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서로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간증하는 예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교회 안에서 두 가지의 규례를 행합니다. 그 중 하나는 세례(침례)인데, 그것은 그의 믿음을 보이는 간증으로서의 행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만찬은 바로 자신이 교회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간증하는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가 주님의 몸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 까닭에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믿음을 입증하기 위하여 세례(침례)를 받으며, 교회의 회원(지체)된 자들이 만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교회관의 차이에 따라서 각 지역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만이 만찬에 참여하게 하느냐 하는 것과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침례)로 믿음을 입증한 사람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논쟁을 벌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몸의 지체가 된 자들이 만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한 인격이 만찬에 참여함으로서 한 몸을 이루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자신을 살핀 후 만찬에 참여하여야 한다.
어느 교회에서 만찬이 있던 날 갑자기 의식을 중단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현재 성도들의 상태가 만찬을 하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들은 당황하였고, 어떤 성도들은 주님의 만찬을 어떻게 중단시킬 수 있느냐며 항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찬을 거부하는 것이 결코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잘 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지도자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거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만찬을 행하는 자가 자신의 양심을 따라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고전 11:25-28)
그리스도인은 성경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만찬은 그리스도인이 한 몸으로, 주님이시며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구별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떡과 잔은 반드시 합당한 방법으로 취해져야만 합니다. 합당하지 않게, 곧 자신을 살피지 않고 참여한 자는 모두 주님에 의해 심판을 받을 위험이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에 만찬을 진행하는 것은 오히려 더욱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만찬에 대한 의미를 퇴색시킬 위험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찬에 참여하는 자는 반드시 자신을 살펴야만 합니다. 만일 만찬에 참여하는 자가 아무 생각 없이 떡과 포도주를 받아먹고 마신다면 그것은 곧 주님의 몸과 피에 대하여 전혀 의식하지 않고 먹고 마시는 것이 되므로 그는 이 만찬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찬은 그리스도인의 고백을 담은 의식입니다. 우리는 무성의한 자세로 아무 생각 없이 이 만찬에 참여한다면 주님으로부터 반드시 책망을 듣게 될 것입니다.
4. 만찬은 주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예식이다.
오늘날 만찬에 대한 자세는 크게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는 반면에 어떤 교회는 지나치게 의식화 시킨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카톨릭으로부터 분리된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가지는 또 다른 특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은 절기 때를 제외하고는 만찬을 행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화체설을 주장하며, 매주 만찬을 실행하는 카톨릭 교회에 대한 거부감에 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카톨릭의 만찬에 대한 자세에 대하여 그토록 흥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의 어디에도 만찬을 정기적으로 몇 번씩 하라는 명령이 주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주의 첫날 행해졌다는 사실과(행20:7), 초대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모일 때마다 만찬을 행했던 사실에 근거하여(행2:46) 자주 행하는 것이 성경적일 것이라고 추정할 뿐입니다. 물론 일부 교회에서는 매주 만찬을 행하면서 매주 행하지 않는 다른 교회들에 대하여 정죄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무리한 판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의 만찬은 단 한 번도 정기적으로 행하도록 가르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교회가 이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여 어떻게 행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this do in remembrance of me), 하시고(고전11:24)
만찬은 주님을 기억하는 예식입니다. 사실상 우리는 모든 경배 모임에서 반드시 주님을 기억하는 예식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칫 이러한 예식이 성도들로 하여금 습관에 빠지게 함으로서 오히려 만찬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형식적인 자세를 갖는다면 결코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만찬은 말 그대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코 만찬의 행위가 우리를 구원하거나 또한 거룩하게 만드는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그것이 비록 주님의 명령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또한 주님의 교회에 대한 지체라는 사실을 알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경배모임에서 어떤 형식들을 가지기를 좋아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모임에서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보다 짜임새 있게 경배를 하는 것은 매우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칫 형식주의로 기울고 그 안에 숨겨진 진정한 의미를 찾는데 실패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만찬은 그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형식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교회의 지체가 되었다는 간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찬은 결코 형식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억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5. 떡과 포도주의 의미
일반적으로 만찬에 쓰이는 떡은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 이스트를 넣거나, 맛을 더하기 위해서 설탕을 넣지 않습니다. 오직 순수한 곡식 가루로만 만들도록 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방법으로 재료를 구우면 딱딱한 상태가 되며, 그것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떡이나 떡과 같은 모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과자와 같은 모습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누기 위해서는 부셔뜨려야 하며 성도들은 그것은 나누어 먹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몸에 대하여 부서진 몸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고전11:24). 실제로 예수님의 몸은 찢기시고, 찔리고, 모욕을 당하셨지만 이처럼 부서졌다는 표현을 쓴 것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부서진 몸인 떡 조각을 먹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몸의 일부를 먹는 것입니다. 그리 함으로서 자신이 바로 예수님의 몸의 일부 곧 지체가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만일 만찬을 행하는 자들이 예수님의 죽으심만을 기억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만찬의 진정한 의미를 절반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만찬은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몸의 일부, 즉 지체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고백이자 간증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잔, 즉 포도주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도 같은 이치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흘리신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인한 죄 사함이 없다면 결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교회의 지체가 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가장 기본적인 믿음이자 간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찬에서 포도주를 나누는 의식을 병행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교회가 이러한 신앙고백을 가진 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포도주와 떡 안에는 주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우리 자신이 주님의 몸의 일부라는 점을 고백하는 신앙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만찬에 참여하는 자들은 마땅히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고백을 가지고 임해야 하며, 떡과 잔을 나눌 때 보다 진지한 자세로 임해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