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요한은 또한 너희 형제요, 환난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과 인내에 동참하는 자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로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노라(계1:9)
요한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신이 형제라는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형제라는 사실에 대하여 보다 확실하게 설명하기 위하여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밧모라는 섬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곳으로 들어가게 된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로 인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하여 주목하여 볼 것은 소아시아 성도들과 더불어 함께 처하고 있는 형편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초세기의 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형제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형제들과 더불어 환난에 처해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세대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은 단 한번도 환난에 처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으로부터 시작된 환난은 로마카톨릭을 거쳐서 공산주의를 포함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심각한 핍박을 받더니 오늘날에는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인들을 궁지로 몰아넣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전혀 환난 가운데 있지 않은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해 가고, 진리에 대하여 양보하며, 사탄의 교리들을 적당히 수용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결코 환난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은 그들을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을 따라 신실한 삶을 살고자 하는 자들이라면 그들은 환난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에 속한 자라는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아 말의 의미는 그가 오직 그분의 왕국에 소망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 땅을 소망을 두지 않고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속한 자들이라면 당연히 다가 올 세상을 소망삼고 살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안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에 속하여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돈과 명예, 권세와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를 이용하여 자신의 세상을 향한 소망을 이루겠다는 생각을 가진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결코 세상에 속하여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하늘을 소망 삼고, 그분의 왕국에서 장차 맛보게 될 영광을 바라며 살 것입니다.
요한이 성도들과 더불어 형제가 된 사실을 말하면서 그들과 동일한 마음을 가졌다고 소개하는 마지막은 인내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내에 대하여 잘 못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평안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주변에서 고통스러운 일들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러한 일들을 위해 기도할 수는 있지만 인내는 그보다 더욱 적극적인 것입니다.
인내는 고통 중에 참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에 대하여도 덕이 되지 않는 것은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견디기 어려운 환경에서 견뎌 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비로 이러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솔직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참는 것입니다. 나의 행동이 덕이 되고 있는가? 나보다는 남을 높이고 존중하는가? 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