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부르심 (출애굽기 4:1-9)

조회 수 3962 추천 수 0 2010.06.08 22:18:39

하나님의 부르심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는 보편적인 부르심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심으로 모든 사람을 구원의 방주 안으로 부르시는 부르심이고, 또 하나는 그 사역을 감당케 하기 위해 구원받은 무리들 가운데 부르시는 부르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시부터 지금까지 그의 백성을 부르시기 위해서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천사들의 도움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부여된 자유의지를 끝까지 존중하셨고, 그 안에서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물론 완전한 구원을 예비한 분이 하나님인 것은 더 이상 변론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계시며,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통하여 일군으로의 부르심에 대한 의미를 더욱 깊이 있게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모세의 지팡이

지팡이는 모세가 의지하는 유일한 도구였습니다. 그는 어딜 가든지 항상 지팡이를 들고 다녔으며 힘들 땐 의지하기도 하고, 양을 칠 때에는 채찍으로도 사용되었던 그의 분신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도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기 전까지 지팡이는 하나님보다도 더욱 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팡이를 들고 물끄러미 서 있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지팡이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지팡이가 뱀으로 변한 것입니다. 결국 모세는 하나님 없는 삶 속에서 사단을 의지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 없이 삶을 지탱하는 것들이 우리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며, 살아갈 용기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의 정체가 사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들에게 돈, 명예, 권세, 지식 등은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훗날 우리의 일생을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믿는 이들조차 넘어뜨리는 사단의 교묘함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돈을 사람함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되나니어떤 자들이 돈을 탐내다가 잘못하고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러 꿰뚫었도다"(딤전 6:10)

그렇다고 이러한 것들이 무시되면서 세상과 격리된 채 금욕 생활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은 모세에게 뱀을 다시 집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뱀은 다시 지팡이가 되었고, 모세는 다시 지팡이를 지니고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나갔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홍해를 향해 손을 내밀 때 홍해가 갈라졌고(출 14:15-21), 지팡이로 반석을 치니 물이 나왔던(출 17:6) 놀라운 일들이 그의 앞에 펼쳐졌습니다. 지팡이는 이제 더 이상 사단의 소유가 아닙니다.

돈, 명예, 권세, 지식과 같은 것들이 하나님 없이 존재할 때 분명히 사단의 용도에 맞게 쓰여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에게도 이와 같은 것들은 유용하게 쓰일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예수 믿으면 지금까지 살며 소유했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를 위해 더욱 능력 있게 쓰여지길 원하십니다. 돈 있는 자는 돈으로, 명예는 명예로, 권세는 권세대로, 지식은 지식대로 주를 위해 쓰여지는 곳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의 가진 재능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가졌던 자였습니다. 돈, 명예, 권세, 지식 등 남부러울 것 없는 모든 것을 소유한 자였습니다. 우리는 그가 가난하게 사역을 감당했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는 그의 고백만을 생각하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주를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되어졌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의 지식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보다 논리적이고도 효과적으로 예수님에 대해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되었고, 그의 명예(로마 시민권)는 그의 죽음을 연장시켜 주면서 오히려 당시 지도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그의 명성은 각 회당을 다니며 증거 하게 하는데 유리한 여건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과거, 현재를 막론하고 가진 재능이나 능력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예수님은 재능의 사용 문제에 대해 보다 강력하게 권면하십니다. '달란트'는 '재능'이라는 말인데(물론 당시는 화폐단위)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가진 자가 주어진 달란트로 열심히 일해서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더 남겨 와서 주인에게 칭찬을 들었지만, 한 달란트 가진 자는 오히려 '주인은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알았다'고 괴변을 늘어놓음으로서 결국 쫓겨나는 신세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마 25:14-30).

결국 하나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능력을 사용치 않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재능과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주인이 달란트를 나누어줌을 기억하십시오.). 아무튼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깨달았다면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바로 알아 하나님의 사역에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품(가슴)에 손을 넣은 모세

하나님은 지팡이가 뱀이 되고, 뱀이 지팡이가 되는 광경을 직접 경험하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모세에게 이번에는 품(가슴)에다 손을 넣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의 품속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 그의 손은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문둥이가 되어 썩어 버린 것입니다. 품 혹은 가슴은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손을 품속에 넣었다 뺌으로서 자신의 마음의 상태가 죄인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죄인의 상태는 결코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판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즉 양심만이 죄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제아무리 부인해도 죄인의 신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세가 죄와 상관없는 순진한 양치기로 신분이 변해 있더라도 여전히 그는 죄인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우리의 겉모습이 아무리 순진한 양처럼 변해서 천사와 같은 삶을 산다 할지라도 그의 신분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시 손을 넣으라고 말씀하셨고, 모세가 다시 행했을 때 그의 손은 깨끗해 졌습니다. 그의 생명 없이 썩어진 죽은 손이 품속에서 다시 나왔을 때 생명 있는 손으로 변화되어 나은 것입니다. 이는 생명 없는 마음은 죽음으로 향하게 하지만 생명 있는 마음은 살리는 일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복음은 가슴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종교와 복음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고 이제는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롬 10:17), 더불어 성령께서 우리의 위로자가 되셔서 항상 곁에서 지켜 주시고, 훗날 하나님의 나라에서 세상에서의 삶의 모양에 따라 상급과 면류관까지 예비해 주셨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종교는 이루어 간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끝없이 행위를 추구하고 그들의 구원을 견고히 하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외형적인 모습만으로 볼 때 오히려 더 완전한 구원을 받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생명이 없는 종교는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삼상 16: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지시기 전에 모세를 부르심에 있어서 그에게 나타낸 두 가지 기적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복음 증거자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도구이기도 합니다. 복음 전도자는 이 도구를 분명히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오히려 발견해야 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여질 수 있는 재능과 생명이 있는 복음입니다.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온전한 사역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재능이 있더라도 생명이 없다면 그는 주를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생명이 있으되 재능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떤 결실을 맺을 수도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반드시 우리의 내면에서 조화를 이루어 결실을 맺어 가야 합니다. 그 속에서 아름다운 결실이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모세의 동역자 아론

하나님은 모세의 부르심을 견고하게 하시고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시기 위해 아론을 세우셨습니다. 비록 육신 적으로는 형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완벽한 동역자를 붙여서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가는 데 있어서 동역자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구약이나 신약의 시대를 막론하고 매우 중요한 교훈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정치에 있어서도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기도 합니다. 쉬운 예로 사울의 주변에는 훌륭한 동역자(충신)가 없었지만, 다윗에게는 그의 생명을 바칠 만한 동역자가 많이 있었습니다. 성경의 모든 곳에서 이러한 동역자 관계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동역자가 되어서 다녔습니다. 능력에 있어서나 지식, 또는 살아온 환경 등을 감안할 때 둘은 매우 비슷하고 우열을 가질 수 없었지만 언제나 베드로가 앞서서 증거 했고 요한은 뒤에서 관망하고, 때로는 돕는 일만을 했습니다. 이 일만을 생각할 때 베드로가 더욱 왕성하고 힘있게 사역했을 것이라고 생각되겠지만 실제로는 요한이야말로 귀하게 쓰여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쓴 요한복음, 요한 1,2,3서, 계시록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경우도 예의는 아닙니다. 본래 바나바가 다소에 있는 바울을 안디옥 교회의 교사로 초청했고 안디옥 교회에서는 최초의 선교사로 바나바와 바울을 세워 파송하였습니다. 바나바의 인솔 아래 바울은 협력했고, 1차 전도 여행을 마치는 동안 언제나 인솔자는 바나바였습니다. 그러나 후에 더욱 크게 쓰임 받았던 자는 바울이었고, 바울 역시 항상 그의 동역자를 곁에 두고 다녔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가 좋은 동역자를 만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군이 되기 위해 부르심 받은 우리는 우리의 재능을 발견하고, 생명의 복음으로 무장한 후 좋은 동역자를 만나기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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