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스라엘의 왕(2) 나답

조회 수 710 추천 수 0 2025.11.01 15:02:03

나답의 길을 따르지 말라

 

본문: 열왕기상 152526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유다 왕 아사의 제이년에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이스라엘의 역사는 언제나 하나님의 언약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약속하셨지만,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그 언약의 길은 여러 번 시험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의 말년에 이방 여인들과의 혼인으로 인해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가운데 들어왔고, 하나님은 나라를 둘로 나누셨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북이스라엘 왕국의 첫 왕이 여로보암,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자가 바로 그의 아들 나답입니다.

 

나답의 시대는 겉으로 보면 안정기에 접어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여로보암이 사마리아 북쪽 지역에 수도를 세우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워 종교체계를 확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종교체계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편의의 신앙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를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부르며 예배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지만,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인간의 안일함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 방식으로 믿는 신앙, 이것이 여로보암이 남긴 가장 큰 죄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나답은 바로 그 죄를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열왕기상 152526절은 나답의 생애를 단 두 절로 요약합니다.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성경은 나답의 생애를 길게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짧은 구절 속에 그의 신앙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였다.’이것이 나답의 인생 전체를 요약하는 말입니다.

 

나답은 여로보암의 아들로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왕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왕실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정치, 군사, 외교에 익숙했을 것이며, 아버지의 영향력 아래서 모든 권력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본질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의 집안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라를 주셨다는 사실을 잊고, 자기 힘으로 나라를 지키려 했습니다. 나답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자랐습니다. 결국 나답의 신앙은 종교는 있으나 하나님은 없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나답이 왕위에 오른 것은 유다 왕 아사 제2, 즉 그의 아버지 여로보암이 죽은 직후였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는 안정기였지만, 영적으로는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제사장은 레위인이 아니라 여로보암이 세운 일반 백성이었고, 예루살렘 성전 대신 벧엘과 단에서 제사가 드려졌습니다. 백성들은 외형상으로는 예배하고 찬양했지만,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영적 타락이 문화로 자리 잡은 시대, 그것이 나답의 통치 시작이었습니다.

 

나답은 아버지의 종교체계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만든 금송아지 신앙을 그대로 유지했고, 오히려 더 강화했습니다. 백성들은 편안했습니다. 예루살렘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편안함이 바로 영적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드린다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편리함이 아니라 순종 위에 세워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답의 통치 기간은 약 2년입니다. 짧은 기간 동안 그는 무엇을 했을까요? 성경은 그가 블레셋의 성읍 기브돈을 애워쌌다고 기록합니다(왕상 15:27). 나답은 왕으로서 정치적, 군사적 업적을 남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전쟁 중에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부하였던 바아사가 반역을 일으켜 나답을 죽였습니다. 나답은 전쟁터 한가운데서 목숨을 잃었고, 그의 시신은 제대로 장사되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이미 예언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인해 그의 집안을 끊으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바로 나답의 시대에 성취된 것입니다. 나답은 그 예언을 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범한 죄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따랐습니다.

 

성경은 나답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이 짧은 문장은 한 사람의 생애를 넘어서, 한 세대의 영적 유산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죄의 대물림입니다. 여로보암의 불신앙은 나답의 불순종으로 이어졌습니다. 나답은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지만,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잘못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의 인생은 짧고 비극적으로 끝났습니다.

 

나답의 생애를 보면, 하나님 앞에서 이 되는 것보다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는 왕이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실패자였습니다. 그는 백성을 통치했지만, 자기 마음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갔지만, 하나님의 길에서는 멀어졌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의 왕위를 제거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정치적인 몰락이 아니라, 영적 심판이었습니다.

 

나답의 생애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줍니다.

 

첫째, 신앙은 대물림될 수도,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부모의 믿음이 자녀에게 이어질 수 있지만, 불신앙 역시 자녀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여로보암이 세운 금송아지 신앙은 나답의 시대에 더 굳어졌습니다. 만약 여로보암이 죽기 전에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다면, 나답의 길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기 신앙을 고집했고, 그 결과 아들이 그 죄를 이어받았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나답의 신앙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세상의 방법을 더 신뢰할 때, 자녀들은 그것을 보고 배웁니다. 우리가 예배를 형식으로 드릴 때, 자녀들은 그 형식을 신앙의 본질로 오해합니다. 신앙의 진정성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전해집니다.

 

둘째,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하나님은 여로보암과 나답에게 수차례 기회를 주셨습니다. 선지자 아히야의 경고, 병든 아들의 죽음, 반역의 조짐 모두가 하나님의 경고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지 말라.” 회개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지만, 그 문은 영원히 열려 있지 않습니다. 나답은 기회를 놓쳤고, 그 결과 그의 왕조는 사라졌습니다.

 

셋째, 편리한 신앙은 반드시 무너진다는 사실입니다. 나답의 시대,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섬기며 이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가증히 여기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가 편리함으로 바뀔 때, 말씀보다 감정이 앞설 때, 복음보다 형식이 우선할 때, 그 신앙은 이미 무너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편리한 신앙이 아니라 순종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말에 순종하면 너희가 생명을 얻을 것이요, 내 법을 떠나면 반드시 죽으리라.”

 

마지막으로, 우리의 신앙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답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왕이 된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공한 왕보다 순종하는 왕을 찾으십니다. 신앙은 한순간의 결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매일의 순종으로 지켜야 합니다. 나답은 왕이 되었지만, 하루하루의 신앙을 지키지 못했기에 무너졌습니다.

 

나답의 생애는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믿음은 세습되지 않는다. 불신앙은 반복된다.” 우리의 신앙이 참된 믿음으로 자녀에게 전해지려면,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바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과 교회를 통해 새로운 신앙의 세대를 일으키기 원하십니다. 여로보암의 집안은 죄의 세대를 낳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의 집안을 통해 은혜의 세대를 세우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이 어떤 세대를 낳을지는, 우리가 어떤 신앙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나는 여로보암과 나답의 길을 따르지 않겠습니다. 나는 편리함보다 순종을, 전통보다 말씀을, 세상적 성공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이 결단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질 때, 하나님은 새로운 왕조, 곧 믿음의 가문을 세우실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집안이 무너졌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새로운 사람들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아사를 통해 심판하셨지만, 그 심판의 목적은 단지 멸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을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백성을 부르십니다. “돌아오라. 내가 너희를 다시 세우리라.” 나답의 길은 짧았지만, 그 길은 우리에게 경고의 거울이 됩니다. 우리는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야 합니다. 내 안의 여로보암은 누구입니까? 내 안의 나답은 무엇입니까?


내가 편리함을 선택하며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리, 그 자리가 우리의 벧엘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은 여전히 기다리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답의 길로 행하지 말라. 여로보암의 죄 중에 거하지 말라. 오직 나의 말씀으로 살라.” 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마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과 인생을 새롭게 세우실 것입니다.


나답은 이름은 자유로운 자’(히브리어 Nadab, נדב)라는 뜻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신앙 없는 자유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십니다. 그 자유는 순종에서 시작됩니다. 나답의 길은 짧은 인생의 비극으로 끝났지만, 우리는 그 길에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만이 진정한 왕의 길임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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