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편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공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민족들을 꾸짖으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나이다 원수가 끊어졌사오니 영원히 무너졌나이다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하신즉 그것들의 기억이 없어졌나이다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시며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시며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시편 9:1–12)
시편 9편은 다윗의 찬양과 기도, 감사와 호소가 어우러진 복합적인 시로, 다윗은 이 시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통치와 약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깊이 있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특히 억울한 자, 가난한 자, 압제를 당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기억하시며,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강하게 드러나는 말씀입니다.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다윗은 단지 입술로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전심이란, 마음의 전부,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모두 다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감사의 이유를 분명히 밝힙니다. “주의 기이한 일들” 때문입니다. 기이한 일들이란 단지 놀라운 사건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해 행하신 구원의 역사와 심판의 사역, 그 크고 놀라운 구원의 손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하나님의 위대한 행사를 기억하고 노래하며, 그것을 세상에 선포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이어서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여기서 다윗은 단순히 하나님의 행위만이 아니라, 그분의 ‘이름’을 찬송한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그분의 존재와 성품, 인격과 위엄을 나타냅니다. 다윗은 지존하신 하나님, 곧 모든 위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찬송은 단지 형식적인 예배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감격하여 드리는 자발적인 응답입니다.
다윗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그는 자신이 승리한 것이 자신의 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편이 되어 주시고 그의 원수들을 무너뜨리셨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공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여기서 ‘송사’는 법적인 언쟁을 말하며, 다윗은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서 재판장이 되셔서 그의 무죄함을 밝혀주시고, 그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셨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법정에서 억울함을 풀 수 없을 때, 하나님의 보좌는 공의로운 법정이 되며, 그분의 판단은 완전합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결코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민족들을 꾸짖으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나이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악을 행할 때 침묵하지 않으시고, 그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다윗은 악인의 이름이 지워졌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지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도 사라질 만큼 완전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권력을 가지고 일시적으로 흥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그 이름조차 남지 못합니다. 반면에 의인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영원히 세우십니다.
이어지는 7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를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시며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하나님은 단지 과거에만 역사하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미래에도 변함없이 보좌에 앉아 계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통치는 유한하지만,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이 말은 모든 나라, 모든 백성, 모든 개인이 하나님의 정의 앞에 설 날이 반드시 온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나 배경을 보지 않으시고, 마음을 감찰하시며 공의로 판단하십니다.
특별히 9절과 10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요새’란 피난처요, 피할 곳입니다. 억울하고 고통당하는 자들이 달려가 피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성벽이 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은 약한 자의 편에 서지 않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가난하고 눌린 자의 편에 서 계십니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삶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결코 버림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백성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행사를 기억하고, 그것을 노래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시는 분이며,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로서,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외침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사람의 기억에서 잊혀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고 반드시 그 생명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십니다.
이 시편 9편을 통해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심판자이십니다. 악인은 일시적으로 형통해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둘째, 하나님은 억울한 자의 편에 서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가 있다면,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기억하시며 응답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그분의 이름을 아는 자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이름을 의지하고 그분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입니다. “주의 모든 기이한 일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 우리가 본 하나님의 손길,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세상 가운데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시며, 그 이름은 온 땅 위에 영광스럽게 드러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