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1장 24절–26절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요한계시록 21:24–26)
요한계시록 21장은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 대한 사도 요한의 환상을 담고 있습니다. 이 중 24절부터 26절은 구속받은 성도들이 그곳에서 누리게 될 삶의 특징들을 네 가지로 보여주며, 그 신비롭고 영광스러운 상태를 간략하지만 깊이 있게 묘사합니다. 본문은 단지 종말 이후의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로서 어떤 삶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첫째로,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라는 표현은 구속받은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안에서 살아가게 됨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만국'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더 이상 민족 간의 구분, 언어의 장벽, 문화적 차이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 아래 연합된 공동체가 펼쳐지게 됩니다. “그 빛”은 하나님의 영광 그 자체를 뜻하며, 어둠이 없는 곳, 거짓과 불의가 설 자리가 없는 거룩한 빛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시편 27:1). 이 빛은 단지 외적 광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진리가 모든 존재를 비추는 빛입니다.
둘째로,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는 말씀은 이전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던 권세들이 이제는 하나님께 복종하며 그분의 영광 앞에 모든 권세를 내려놓게 됨을 상징합니다. 성경에서 '땅의 왕들'은 대부분 타락한 세상 권력으로 나타났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짐승과 바벨론에 저항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던 자들을 지칭하기도 합니다(계 11:18, 19:15). 이들은 하나님께 영광과 찬미와 존귀를 드리게 될 것이며, 그들의 통치와 권위는 더 이상 자기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섬김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이사야서에도 예언되어 있듯, “이방 나라들이 네 빛으로, 왕들이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이사야 60:3)는 말씀이 이 장면에서 성취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와 자유를 의미합니다. 세상의 도성들은 적들의 공격을 두려워해 밤이 되면 성문을 닫았지만, 새 예루살렘에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항상 비추며, 어떤 위협이나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한 성도들에게 주어진 영원한 안식과 자유를 상징합니다. 시편 121편 4절에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철저한 보호 아래 성문은 닫힐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넷째로,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는 표현은 앞절의 내용이 반복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 반복은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게 될 성도들의 삶이 얼마나 풍성하고 존귀한지를 강조하는 방식입니다. 만국의 영광과 존귀는 각 민족과 문화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봉헌, 헌신의 총체를 의미하며, 단지 인간의 영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경배의 산물이 되며, 구속받은 자들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향하는 제사가 될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이러한 영적 예배가 완성된 형태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구속받은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에서 누리게 될 삶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자유롭고 안전하며, 모든 민족과 세대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온전한 공동체의 삶입니다. 이는 우리가 장차 바라보아야 할 소망이자, 지금 이 땅에서부터 살아가야 할 천국 백성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빛 가운데 행하며 그분께 영광 돌리는 자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 119:105). 주의 빛을 따라 걷는 그 길이 결국 우리를 새 예루살렘의 영광으로 인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