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7장 9절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요한계시록 17:9)
사도 요한이 환상 가운데 본 음녀는 단지 많은 물 위에만 앉아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붉은 짐승 위에 앉아 있었고, 또한 성경은 그 짐승의 머리를 가리켜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상징적이며 신학적으로 깊은 의미를 가진 말씀입니다.
고대 로마는 일곱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로마 제국 사람들은 스스로를 ‘일곱 언덕 위에 있는 도시’라고 부르기를 즐겨했고, 실제로 당대의 문학과 역사서에도 그러한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래서 다수의 학자들은 본문에서 말하는 **‘일곱 산’**이 로마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이는 바벨론이라는 이름이 상징적으로 로마를 가리키듯이, 일곱 산도 로마 제국의 종교적 타락과 우상숭배의 중심을 암시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요한계시록은 단순한 지리적인 묘사로 머무르지 않습니다.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라는 말씀은 이 상징을 해석함에 있어서 성령의 통찰과 신령한 분별력이 필요함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이 일곱 산은 단순히 로마의 일곱 언덕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며 사단의 권세에 굴복한 세상 권력들의 총체적 상징으로 해석해야 마땅합니다.
성경에서는 종종 ‘산’이 권세와 나라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사야 2장 2절에서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라고 하셨고, 예레미야 51장 25절에서도 바벨론을 “멸망의 산”으로 묘사합니다. 이는 곧 산이 정치적, 종교적, 군사적 권세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본문에서 말하는 ‘일곱 산’은 단순히 물리적인 지형을 넘어, 세상 권세의 완전한 수를 상징하는 일곱 왕들, 다시 말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모든 적그리스도적인 통치자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해석은 뒤이어 나오는 “일곱 머리는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는 말씀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짐승 위에 앉아 있는 음녀를 통해 우리에게 세상 끝에 이르기까지 교회를 미혹하고 박해하는 사단의 세력이 얼마나 집요하고 치밀하게 역사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의 화려함과 부요함을 내세우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된 복음과 경건한 삶을 떠나게 만들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도 일곱 산 위에 앉은 음녀, 즉 세상의 유혹과 권세를 통해 역사하는 사단의 실체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체가 아무리 크고 교묘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성령의 분별력으로 그 실체를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힘에 압도당하지 말고, 말씀 안에서 분별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따르며 깨어 있는 자에게 참된 승리와 면류관을 허락하실 것입니다(요한계시록 2:10 참조).
끝으로, 우리가 오늘도 살아가는 이 세상은 로마처럼 화려하고 매혹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나, 그 속에는 짐승의 권세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바라보며, 이 마지막 시대에 주님의 신부로서 정결함을 지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계 13:18)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라.” (계 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