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7장 3-4절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한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로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더라.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요한계시록 17:3-4)
사도 요한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광야로 나아갑니다. 외형적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땅 같지만, 하나님의 계시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됩니다. 영적으로 보면 광야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의 장소이며 동시에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말씀을 듣는 자리입니다. 바로 그 광야에서 요한은 충격적인 환상을 보게 됩니다. 한 여인이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는데, 그녀는 자주 빛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화려하게 꾸미고 있었으며, 손에는 금잔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금잔 안에는 가증한 것들과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큰 음녀' 바벨론의 모습입니다.
붉은 빛 짐승은 요한계시록 13장에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동일한 존재로, 세상의 권세와 사탄의 지배를 상징합니다. 붉은 색은 성경에서 전쟁과 피, 죄악, 사치와 정욕을 상징하는데, 이 짐승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로 가득 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흉내 내며 조롱하는 이 존재 위에, 바로 음녀가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문화, 정치, 경제 시스템이 사단과 결탁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구조 안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 음녀는 자주 빛과 붉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 색은 귀족과 여왕의 옷이었으며,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외형은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그녀가 들고 있는 금잔 속에는 온갖 가증한 것들과 음행의 더러운 것들, 즉 우상 숭배와 정욕, 탐심과 교만, 거짓과 배도의 영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는 단지 개인적인 타락이나 부도덕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문화 전체가 어떻게 사단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예레미야서 51장 7절에서 바벨론은 “여호와의 손에 잡힌 금잔이라 온 세계를 취하게 하였도다”고 말씀합니다. 즉 음녀 바벨론은 단순한 한 시대의 나라나 도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존재했던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 타락과 우상 숭배의 총체적인 실체입니다. 겉으로는 황금잔과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으나, 실상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죄악의 중심지입니다. 마가복음 13장 14절에서 예수님께서도 경고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는 곳이 바로 이 음녀의 자리입니다.
음녀가 타고 있는 짐승은 열 뿔과 일곱 머리를 가진 짐승으로, 권세와 지혜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며 세상 사람들을 유혹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그 짐승이 상징하는 것은 단순한 한 나라나 권력이 아니라,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반기독교적인 문화와 정신이며, 성도들의 신앙을 공격하고 무너뜨리는 사탄의 전략적 시스템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도 음녀의 활동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도색 잡지, 음란 영상물, 물질 만능주의, 자기 우상화,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 철학, 타락한 예술과 문화의 흐름들 모두가 이 음녀가 들고 있는 금잔 속에 담긴 ‘가증한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 모든 것이 사단이 사용하는 유혹의 수단이며, 그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순결함을 잃고 믿음에서 떠나게 만드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음녀는 성도들을 그 아름다움과 화려함으로 유혹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유혹 앞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순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계시록 19장에서 주님은 흰 세마포 옷을 입은 거룩한 신부, 곧 교회와 성도들을 맞이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성경이 묘사하는 음녀의 본질을 분별하고, 그녀의 외형적 화려함에 속지 않도록 성령의 지혜와 분별력을 간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순결을 유지하고 있는지, 혹여 세상의 문화와 편리함 속에 믿음을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시 주님께로 돌이켜, 금잔의 유혹이 아니라 말씀의 순전한 포도주를 따르고,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거룩한 신부로 주의 오심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이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살아 있는 지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음녀 바벨론의 유혹 앞에서 거룩한 순결을 지키는 신부로 살아가시기를,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 때 담대히 그 앞에 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