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삶(6) 짐을 내려놓기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마8:26-27)
처음 광풍이 일었을 때에 그들은 전문가로서 최선을 다해 배를 진정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한계 상황에 이르자 결국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리고는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25)라고 하면서 비전문가라고 생각했던 예수님께 문제의 해결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찼고,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전혀 볼 수 없이 허둥대고 있었습니다. 인간 본연의 모습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항상 우리 곁에 모셔 두고 살면서도 환난이 닥쳐 올 때 주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우리는 아무리 인생에 경험이 풍부하고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근본적인 문제(광풍)는 결코 해결할 수 없음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밤새 기도하시고, 매일 여행하시는 가운데 매우 피곤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주무시는 것은 의도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바다 여행 중에도 제자들을 훈련하시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더욱이 광풍이 일고 있는 가운데서도 주무셨다고 하는 것은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교훈 하시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의도가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무시던 예수님은 깨우는 제자들을 향해 먼저 꾸짖으시고 광풍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음을 꾸짖으신 예수님은 좀 더 확신 있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을 촉구하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어려움을 만날 때에 주님은 먼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 속에서 말씀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문제에 대해 먼저 해결해 주신 후 깨닫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깨닫게 하신 후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믿음과 두려움이 서로 반비례하고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곧 믿음이 있는 자일수록 두려움이 없다는 말입니다.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은 사탄이 심는 것입니다. 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내면에 예수님을 심는 방법외에는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광풍이 이는 속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면에 변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곧이어 예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고 잔잔하게 되자 그들은 그 권세에 대해 의문에 싸이게 되었습니다. 이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큰 변화를 주는 계기가 되는데, 풍랑이 그들 앞에 일고 있었을 때는 바다만 바라보다가 해결 된 이후에는 예수님만 주시해서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었던 제자들, 그들은 새로운 믿음의 계단을 밟아 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항상 주님의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므로 주님의 능력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떨던 제자들이 다급했을 때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은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을 의지하지 못한 까닭도 있겠지만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는데 더 큰 원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세상에서도 우리를 두렵게 하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도 예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믿음을 좀 더 성숙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속에 있는 두려움을 말끔히 제거해 버리고 오직 주님의 역사 하심만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6:34)
인간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론 그 꿈의 실현을 위해 정신 없이 뛰어 다니기도 하고 수단 방법 가리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일하기도 합니다. 주님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그 날의 괴로움을 그 날에 족하도록 살아가야 한다고 교훈합니다. 곧 현재 내게 처해진 입장을 지혜롭게 처신하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인간들은 모두가 불투명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다. 우리들 대부분도 불확실한 인생 속에서 설계도를 그려 놓은 상태에서의 삶이 아닌 매일매일 삶을 만들고 완성시켜 나가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내일 일은 우리의 염려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제자 된 삶을 위해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주님께 맡기는 생활이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주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설계도를 따라 지혜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눅22:42)
예수님께서는 세 번이나 반복하시면서 기도를 하셨습니다(마26:41-45). 예수님은 기도가 진전되어져 가면서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구했습니다. 이 기도의 내용은 이미 고난을 각오하고 결단이 내려진 기도였습니다. 즉 기도를 통하여 내적 승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장면입니다. 인간은 본래 불순종의 체질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순종을 배우시고, 이 내적인 승리를 통하여 당당히 죽음 안으로 들어가실 수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의 모습과 예수님의 모습을 대조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기도로 자신 앞에 온 시험을 극복하고 계신 예수님, 그리고 피곤하여 졸고 있는 제자 이 둘은 결국 고난을 당하게 되자 예수님은 담대히 임하게 되었고 제자들은 앞 다투어 도망갔습니다. 과연 우리는 항상 깨어 있는지 돌아 볼 필요가 있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모든 세대에 걸쳐서 사람들은 육체적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고하고 영적으로는 죄와 죽음의 짐을 지고 고달픈 인생의 항해를 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모ᅟᅳᆫ 사람들이 지고 있는 죽음에 이르게하는 죄의 짐을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짐으로서 구원을 얻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 안에 있는 죄의 짐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그는 평생을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비참한 신세가 될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55:22)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37:5-6)
시편 기자의 찬송처럼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짐을 여호와께 맡기고, 또한 우리의 길도 맡기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분은 가장 완벽한 것으로 우리에게 더해주실 것입니다. 모든 짐을 내려놓으십시오.